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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3. 2020

2. 새치의 원인은 무엇일까?

마흔 하나, 염색하지 않기로 했다.

몇 해 전,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 친구는 스무 살 때 만나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는 친구이다.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다 새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요즘 새치가 심해져서 스트레스야.”

이런 내 말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야, 너 대학생 때도 새치 많았었어.”



아이를 낳고 노화가 급속도로 빨라져 새치도 함께 심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 기억 속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십 대 새치의 존재를 친구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고3 때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가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1년 동안 했다. 당연히 햇빛을 볼 수 없었고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졌다.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피부가 하얗고 창백했으면 좋았으련만, 이마에 잔뜩 난 여드름 때문에 울긋불긋 단풍잎 같은 창백함이었다.


새치의 원인을 찾아보니, 스트레스와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왔다. 고3 때는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에 새치가 생겼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생 때는 왜 새치가 생겼을까? 고3 때 생긴 새치가 20대 때도 이어졌던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머리 염색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범생으로 지내면서 갇혀 있던 일탈 본능을 깨우고 싶었다. 단발머리에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하고 학교를 다녔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는데 , 지금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아주 그냥…….



아무래도 난 유전적인 영향이 큰 것 같다. 형제 다섯 명 중에 3명이 새치가 심한 편이다. 큰언니, 나 그리고 남동생. 40대 후반의 큰언니도 3개월마다 새치 염색을 한다. 둘째, 셋째 언니는 그에 반해 새치가 심하지 않아서 기분전환으로 가끔 염색할 뿐이다.


큰언니와 나, 동생이 새치가 심한 이유는 아빠 때문인 것 같다. 70대 중반이신 아빠도 새치가 심한 편이다. 그 나이 정도 되면 염색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빠는 이발소에 가서 규칙적으로 염색을 하신다.


어렸을 적, 외삼촌 집에 놀러 가면 꼭 시키는 일이 있었다. 바로 삼촌의 새치를 뽑는 일이었는데, 하나에 10원씩 쳐주었다. 기억으론 외삼촌의 연세가 30대 후반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새치를 뽑아주고 500원 정도 벌 수 있었으니, 외삼촌도 새치가 꽤 심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아빠 쪽 유전, 엄마 쪽 유전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서 염색할까, 미용실에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미용실에 가서 염색하는 것이 쉬운 일이긴 하지만, 나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숱이 워낙에 많아 한번 미용실에 가면 직원들이 여러 말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머리숱이 얼마 없어 보이는데 막상 염색을 하기 시작하면 가늘고 촘촘하게 박혀 있는 머리카락 때문에 다들 놀란다.  할 수 없이 염색약을 조금 더 섞어야 한다. 난 그게 참 미안했다. 그들을 수고롭게 만든 게 나 때문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삼십 대까지는 새치가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마흔이 된 이후로 새치의 정도가 심해졌다. 노화가 천천히 진행되다가 마흔 이후론 급격하게 빨라진 기분이다. 마흔이 중년으로 넘어가는 문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오는 이유도 바로 내 몸으로 느껴지는 노화의 속도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노화의 징후들이 생긴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만 할까?


사십 대 후반의 큰언니는 지금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던 삼십 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여유롭다.

좋아하는 일을 과감하게 해 보는 지금이 더 좋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고 퇴화되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나온 시간만큼 자기만의 경험이 쌓이고, 관계가 쌓이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제는 앞머리를 조금 잘랐다. 짧은 머리에 앞머리까지 자르니 바가지 머리가 되어 버렸다. 점심으로 떡국을 끓였다. 간을 보다 뜨거운 국물에 입술을 대이고 말았다. 바가지 머리에 퉁퉁 부운 입술을 내밀고 남편에게 다가며 인상을 찌푸렸더니,

“자기 꼭 복어 같아.”

라고 말했다. 함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던 남편에게 다가가 옆머리카락을 들추며 보여주었다. 

“어때? 진짜 심하지?”

“그러게. 많이 심하네.”

그리곤 또 같이 웃고 말았다.


부부가 함께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다가 아님을 잘 아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퇴화가 아니라 변화가 아닐까? 그 변화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새치의 이유가 스트레스와 노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유전과 가족력을 더하고 싶다. 부디 내 아이들은 엄마 말고 아빠를 닮기를.


아!! 

남편은 정수리 머리가 점점 빠지면서 대머리 걱정을 하고 있는데, 대머리가 더 나을지, 흰머리가 더 나을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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