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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6. 2020

사랑을 잊고 싶지 않아서_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1

1일 1소설

민주를 다시 만난 건 수학 학원에서였다.

처음엔 낯설지 않은 얼굴 때문에 긴가 민가 했는데, 다른 애들이 걔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아! 하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웃을 때마다 생기는 왼쪽 볼의 보조개 하며, 눈웃음 하며, 10년 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는 척할 수 없었다. 걔가 날 알아보지 않길 바랐다. 이 학원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좋았다. 친구 홍이랑 다닐 수 있는 학원이기도 했다.


“너 혹시……. 김 찬 아니니?”

날 부르는 소리에 나는 바위처럼 우뚝 서 버렸다. 이제 다 틀렸다.

“어~ 차니 차니 김차니~ 누구야? 누구? 응? 누구야? 이쁜데?”

올챙이 같은 새끼, 홍이가 자꾸만 옆에서 치근덕대며 실실거렸다.


“어, 안녕. 오랜만이다.”

이렇게 싱겁게 아는 척을 해버리다니, 망했다.

“야, 누구냐니까?”

홍이 자식이 자꾸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야 쫌, 그냥 유치원 같이 다니던 애야.”

민주의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시간 있니? 너무 반가워서 그래. 저기 편의점 안 갈래?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너 아직도 아이스크림 좋아해?”

“어, 아직 좋아해.”

“안녕, 난 차니 차니 김차니 친구 홍이 홍이 최홍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나도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특히 난 스크류바를 좋아해. 삐익 삐익 꼬였네~ 들쑥날쑥 해~ 으해해해~”


홍이는 갑자기 다리와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휴~ 너무 창피해 이대로 나가고 싶었다.

“어 그래. 반가워. 난 민주라고 해. 가자, 내가 사줄게.”

결국 홍이의 손에 이끌려 민주를 따라가고 말았다. 민주는 지나가는 여자애들한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민주는 스크류바 세 개를 들고 나왔다.

“여기 앉아서 먹고 갈까? 저녁이 되니 날씨가 시원하네”

손으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이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 뜨렸다. 올챙이 같은 홍이 자식은 옆에 앉아 연신 싱글벙글하며 스크류바를 혀로 핥아먹고 있었다.


“사실 긴가민가했어. 근데 이름 듣고 알았지. 나 진짜 너 보고 싶었는데, 그 날 이후로 널 못 만났잖아.”

“어, 그러게.”

“너 아직 그 동네 살아?”

“아니야, 이사 갔지.”

“그렇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도 민주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 아직도…….”

“응? 아직도 뭐?”

“아직도, 그.... 능력 남아 있어?”

민주의 말에 스크류바를 혀로 핥아먹고 있던 홍이 녀석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능력이라니? 이 자식이 능력이 있어? 무슨 능력? 나 이 자식이랑 초딩 때부터 친군데, 아~무 능력 없던데. 아, 능력이라면 하나 있다. 무관심, 무욕. 살다 살다 이렇게 욕심 없는 놈 처음 봤다니까. 얘 유치원 때도 그랬냐?”

홍이 자식의 말에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 그렇구나. 사실, 궁금했어. 아직도 그 능력이 남아 있는지.”

민주의 말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능력이 어딨어. 없지. 그때도 내가 거짓말한 거야. 농담이었다고. 너 진짜 믿었냐? 너 진짜 순진했다야.”

내 대답에 해바라기 같던 민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스크류바가 녹아 분홍색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 안에 쑤셔 넣고 와그작 씹었다. 세 입 만에 아이스크림은 자취를 감추었다.


“야, 늦겠다. 얼른 집에 가자. 야 홍이 일어나. 가야지.”

“어, 나 아직 남았는데. 나 엄청 아껴먹고 있단 말이야.”

“얼른 일어나. 민주야 반가웠어. 학원에서 또 만나.”

“어, 그래. 잘 가. 난 좀 이따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

“어, 그래.”



  민주 때문에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한 번씩 민주를 생각하긴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정말 잊고 싶다. 그 기억들을…….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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