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May 05. 2020

사랑을 잊고 싶지 않아서 _ 첫사랑

1일 1소설

그 애가 보고 싶어 학교엘 다녔다.

수업은 지루하기만 했고, 여자애들 놀이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양쪽에서 고무줄을 잡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은 그 고무줄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다른 여자애들에 비해 키가 컸던 나는 다리도 길었다. 다리를 쩍 벌리면 넘지 못할 고무줄이 없었다.


유치한 그 놀이를 계속했던 이유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자애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유독 친구들을 따돌리지 못해 안달 난 애가 한 명 있었다.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오늘부터 쟤랑 놀지 마.”

  그 한마디에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부당함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따돌려야 했다.


여자애들의 쓸데없는 감정싸움에 지쳐 먼 산을 보고 있을 때, 그 애가 다가왔다.


“너 뭐 보고 있냐?”

“아무것도. 왜?”

“아니 그냥, 먼 산 보고 있길래.”

“어떻게 알았냐?”

“네가 지금 그러고 있잖아. 뭐 고민 있냐?”

“그냥, 재미없어서.”

“재미없긴 하지.”


걔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쟤도 나처럼 재미없는데 놀고 있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 남자애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걔가 읽고 있는 책, 그 아이와 친한 친구들,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의 이름, 그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또 한 친구를 지목했다. 그전에 지목된 얘는 따돌림에서 해방이 돼었고 그 여자애와 단짝이 되 있었다. 이번에 지목된 아이는 나와 친했던 ‘수’라는 여자애였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엔 그 여자애의 행동을 봐줄 수가 없었다. 유치한 그런 놀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난 싫어. 난 쟤랑 놀고 싶지 않아. 난 수와 계속 놀 거야.”

난 친구 수를 선택했다. 그런 용기 있는 행동을 하면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용기 내줄 줄 알았다. 이런 내 행동을 그 남자애가 알아줬으면 했다.

‘난 다른 여자애들과는 달라.’

난 당당하게 수랑 둘이서 놀았다.


며칠 후, 수가 나에게 말했다.

“있잖아, 네가 나랑 놀아준 건 고마운데, 사실 난 다른 애들이랑 같이 고무줄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싶어. 둘이 노는 건 재미가 없잖아. 미안해. 난 이제 쟤들과 놀기로 했어.”


내 용기 있었던 행동은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난 혼자가 되었다. 혼자 노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제발 걔가 날 보지 않기를 바랐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읽으며 눈물을 삼켰다.


“야, 뭐하냐?”

“보면 모르냐. 책 읽잖아.”

“왜 안 나가고 교실에 있냐고.”

“시시해서”

“그렇긴 하지.”

걔는 이 말을 하고 내 옆에 앉았다.

“넌 왜 안 나가는데?”

“나? 그냥, 더워서. 밖에 엄청 더워.

너 축구 좋아하냐? 이따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축구할 건데 너 같이 할래? 그땐 덜 더울 걸. 찬이랑 욱이도 같이 할 거야.”

“어……. 그래, 뭐.”

난 그 뒤로 남자애들이랑 축구를 했다. 엄청 열심히

뛰었다. 한 번씩  골키퍼도 했다. 큰 키 덕분에 제법 골을 잘 막았다.

여자애들은 그런 날 아니꼽게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여자애들 아니어도 충분히 재밌게 놀 수 있었다.



폭풍 같던 5학년 시절을 보내고 6학년이 되었다. 학생수가 적었던 우리는 모두 같은 반이 되었다. 유치했던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따돌림 놀이가 사라졌다. 그게 사라지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세세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단지 여자애들 무리 중에 나처럼 그 애의 부당함을 느낀 애들이 몇 있었고, 나와 함께 놀고 싶다며 찾아왔다는 사실만 말해주고 싶다.  



 난 여전히 걔를 쳐다보고 있다. 이제는 걔를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콩닥 거리기까지 한다. 이게 좋아해서 그런 거라면, 진짜 어떻게 하지?


편지를 쓸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는 순이 언니의 일을 생각하면 그것도 못할 짓이다. 순이 언니가 웅이 오빠에게 러브레터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나중에  그 사실이 창피하고 후회 스럽다고 했다.  이틀 동안 웅이 오빠네 집 앞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고 했다. 결국 그 편지는 순이 언니에게 다시 돌아왔다. 순이 언니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함부로 편지 쓰지 마.”


난 걔가 점점 좋아졌다. 걔도 날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은근히 날 챙겨주는 것 같았고 같이 놀자고 했다. 특히 남자애들끼리 축구하는데 한 사람이 부족하면 꼭 날 불렀다. 그게 날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걔랑 가장 친한 남자애를 조용히 불렀다.

“야, 김 찬. 나 할 말 있는데.”

“뭔데?”

“이따 학교 끝나고 니 친구랑 같이 저쪽 놀이터로 올래?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오 그래? 알았어. 이따 갈게.”



나는 걔한테 할 말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냥 좋아한다고 확 말해 버릴까, 아니면 너도 날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이 생각을 하느라 수업시간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수와 함께 학교 옆 놀이터로 향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수까지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놀이터에 도착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걔한테 할 말을 생각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디 가냐고, 나 집에 가야 된다니까.”

“아 그냥 따라와. 잔 말이 많아. 아이스크림 사준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어디 가는데 그래.”

“아 그냥 묻지 말고 따라오라니까.”

걔내들이 다가오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걔와 눈이 마주쳤다.

“아, 뭐야. 왜 여기 니가 있어? 아 진짜, 찬이 너 이 새끼가. 아 왜 날 여기 데려 온 거야. 아 진짜. 나 이런 거 존나 짜증 나. 나 집에 간다.”


걔는 날 보더니 갑자기 뛰어 가버렸다. 뒤에 남아있던 찬이가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난 데리고 왔다. 이제 아이스크림 사줘.”


난 멍하니 그 아이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끝나 버렸다.

걔는 왜 나한테 축구를 같이 하자고 한 걸까?


작가의 이전글 3. No Dye, 3일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