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Jan 16. 2019

다카에 사는 사람들

복잡함 속에 보이지않는 질서가 있는 곳


다카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이다. 수도 답게 큰 빌딩이 많고, 사람이 많이 산다. 다카의 도로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한 길이 막히면 시내 이곳, 저곳이 다 막히게 된다.

복잡한 다카의 도로


다카에는 많은 외국인이 산다. 예전에는 주로 개발협력단체, 대사관, NGO 사람들 그리고 봉제회사 사람들이  많았다. (다카에도 치타공 처럼 봉제회사가많고, 공장지역이 잘 형성되어있다.여러 유명한 옷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대기업, 전기, 건설 쪽 사람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포화상태인 건설업이 다카에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도로, 다리, 건물, 지하철 등의 공사를 위해 해외 여러 업체에  수주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저렴한 회사는 중국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중국의 건설 업체가 낙찰되곤 했다. 하지만 공사 진행이 잘 되지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 건설업체가 낙찰을 받는다. 한국의 기업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카에 사는 외국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까운 동네에 모여 산다. 대부분 안전한 동네에 살고 있다. 우리는 처음 다카에 왔을 때 버나니(Banani) 라는 지역에 살았다. 버나니는 주택과 상가가 많고, 코리안 마트가 가깝다. 한국으로 따지면 ‘홍대’ 비슷한 동네지만, 비교하기엔 너무 차이가 크다.

버나니 중심을 관통하는 길은 다카의 중심지 굴산(Gulsan)과 에어포트 로드를 연결해준다. 그래서 자주 길이 막힌다.


우리가 살던 집 근처에는 현지 성당이 있었다. 그곳은 다카에서 가장 큰 성당이고 사제들이 모여 살고 있다. 넓은 정원과 운동장이 있고, 각종 채소밭과 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는 가끔 그곳에 가서 놀고 오곤 했는데, 운동장의 모래 위에서 모래놀이를 하거나 토끼 우리에 가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다카, 버나니 성당  

한번은 우리가 놀고 있는 운동장에 토끼들을 대려와 풀어놓았는데, 귀여운 토끼들을 안아주고, 만지며 놀 수 있었다. 귀여운 새끼 토끼는 꼭 솜뭉치 같았는데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지 도망가지도 않고 품에 꼭 안겨 있곤 했다.

다카, 버나니 성당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는 굴산(Gulsan)이라는 지역이다. 굴산은 다카의 중심지역으로 높은 빌딩과 마트, 커피숍, 식당등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우리는 굴산에 있는 유니마트에 자주 장을 보러 갔다.  유니마트는 우리나라의 이마트와 비슷한 마트인데 각종 식료품과 고기,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 모여 있은 바리다라(baridara)에도 외국인이 많이 살고있다. 주로 대사관직원들이나 어메리칸 스쿨에 다니는 아이들의 가정이 살고있다. 이 지역은 보안이 철저하다. 그리고 월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우리는 버나니 지역에서 1년을 살고 보슌도라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보슌도라에는 다카한인교회와 에벤에셀 스쿨(한국학교)이 있어서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있다.

원래 그 곳은 갈대가 우거진 늪지대였다고 한다. 그곳을 개간해서 늪지를 매워 땅을 만들었다. 다카 한인교회는 20년 전, 그곳이 아직 늪지 일 때 땅을 사서 건축을 했다. 그때는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곳이 주택단지로 변해 한인교회 주위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비가 많이 오면 호수로 변해 배를 타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도로가 침수되곤 한다.그리고 배 대신 침수된 도로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다카, 보슌도라/비가 조금만 와도 도로가 침수된다

방글라데시 다카에는 참 다양한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온 사람들도 많고, 나처럼 남편을 따라온 사람들도 많다. 방글라데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 제 각각의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치가 떨리도록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다카를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갈 곳 없던 치타공에 비하면 다카는 천국이었다.

다카에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치타공에 가서 한번 살아봐요. 그럼 여기가 좋아질 거에요.’

라고 속으로 혼자 말하곤 했다.


남편들이 회사에 가고, 자녀들이 학교에 가면 부인들은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도 제 각각이다. 건강을 위해 골프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 비하면 골프 가격이 많이 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카에서 골프를 시작한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더운 그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인홀을 돈다. 골프를 전혀 못하는 문외한의 눈에는 더운데 왜 할까 싶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 걸어 다니며 땀을 흘리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했다. 어떤 사람들은 요가, 에어로빅을 하기도 한다. 미술을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뭔가 좀 해볼까 싶었지만 좀 채 시간이 맞질 않았다.




다카에 사는 엄마들은 모든 스케줄이 아이와 남편한테 맞춰져 있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마치는 시간에 픽업을 하고, 아이들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남편 먹을 거리를 준비한다. 아이들 학원을 보내고, 아이들을 위해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친구와 만나 노는 것)를 잡는다. 엄마의 시간은 이렇게 아이와 남편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한국 식당이 있긴 하지만 집에서 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뭘 먹을지 고민한다. 부인들은 만나기만 하면 “오늘 뭐 먹지?” “오늘 저녁 뭐 해먹어?” 라고 묻는다.

마트를 한번 다녀오면 막히는 차와 복잡한 거리 때문에 녹초가 되곤했다. 뭔가 하나를 하더라도 수고로움이 따른다.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이유도 없이 막혀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다카의 거리도 치타공과 마찬가지로 릭샤와, CNG와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카는 매우 발전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큰 건물이 들어서고, 공사를 하고 있다. 큰 건물들 사이사이에는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다. 부자들은 어마어마 하게 부자이다. 하지만 하루에 만원 정도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도 즐비하다.

다카, 보슌도라/건물과 건물 사이에 또 건물을 짓고있다.

내가 살았던 보슌도라는 보슌도라 기업의 이름이다. 보슌도라 기업은 화장지, 종이, 시멘트를 취급하는 기업인데, 그 지역을 개간 하면서 이름을 보슌도라 (Bashundara Residence)라고 지었다. 이곳에 한인 교회와 한인학교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한인들이 모여 들었고, 지금은 꽤나 많이 살고 있다. 집값이 원래는 쌌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최근에는 두배로 올랐다.

다카는 더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더 물가가 오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비가 많이 들었다. 집값도 치타공의 두배였다. 코마트에 가서 한국보다 3배나 비싼 한국 제품을 고민고민 하며 샀다. 치타공에서는 현지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다카에서는 현지 식당 보다는 한인 식당에 가서 외식을 했다. 치타공에 비해 생활비를 배로 쓰며 살게 되었다.





“서울에 집 하나 살 수는 있냐?”

지난 여름, 아빠는 나에게 서울에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냐고 물어봤다.

“아빠, 서울 집값이 얼마인줄 알아요? 평생 모아도 못 살거에요. 아니면 빚내서 사야지”


방글라데시에서 6년이나 살았으니 돈도 많이 모으고, 금의환양해서 보란듯이 집도 살 줄 아셨나보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사우디에 가서 몇년 고생하고 오면 좋은 집을 살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다카의 물가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앗차 하는 순간 돈 한푼 못 모으고, 오히려 빚을 지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왜 다카에 살까?  왜 다카를 떠날 때 다들 눈물을 흘리며 떠날까?


그 이유는 그곳에 살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 과 맥시멀, 그 중간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