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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10. 2020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

행복일까? 아닐까?

요즘 남편과 귀농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언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간 가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친정아버지가 하시는 유자 농사를 배워도 될 것 같고, 그게 힘들다면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생각해요.


“영어 학원 하나 차리자.”


몇 년 후엔 고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친정아버지께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심 바라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요.

하기사,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데 다들 객지에 살고 있으니 많이 적적하시겠죠.

 그렇다고 아버지가 시골 할아버지들처럼 심심한 노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에요. 바다낚시를 좋아하셔서 배 타고 나가 각종 물고기를 잡아 오시기도 하고, 칠순의 연세에 색소폰을 배워서 발표회도 하시고, 동네 이장도 하시고요. 워낙 활동적인 분이라 가만히 있질 못하시죠.



저는 시골로 가게 되면, 어르신들 모시고 글쓰기 모임이나 할까 봐요. 

“당신의 인생을 글로 써보세요.” 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타이틀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써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 친정 부모님의 이야기만 써도 족히 책 두 권은 나올 것 같네요.


문제는 아이들인데요. 여기서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한글이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읽고  말하는 것은 잘 하지만, 쓰는 걸 힘들어해요. 집에서 한글 공부를 좀 해야 하는데, 프랑스어와 영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죠. 아니, 시간은 있는데 게임하고 노느라 한글 공부할 시간이 없네요.


어제는 둘째 아이에게 물어보았어요. 시골 가서 사는 거 어떻겠냐고요.  

아이는 잠시 고민을 하더군요. 그리곤 이렇게 대답했어요.

“한국에 놀러 가는 건 좋지만, 학교는 여기서 다니고 싶어.”


지금까지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지 결정할 때 아이들의 의견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곳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곳이었죠. 하지만 아이들이  크니,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 모두 함께 행복할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겠죠.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8년 전에 방글라데시로 떠났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땐 방글라데시로 가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었어요. 교민 수도 적었고요.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방글라데시에 일 하러 간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남편도 저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어요. 지금 고생스럽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이 시간들이 우리에게 보상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긴 했지만, 남들이 모두 아니라고 했던 길을 가길 잘했던 것 같아요. 젊은 나이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본 남편은 지금 30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인정은 받고 있거든요.

저 역시,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을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남들이 모두 가지 않는 시골에 우리가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욕심은 없거든요.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길 바라고 있어요. 그 일을 찾을 때, 지금 이곳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거죠.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지내야 하는 이 시간들이 정말 어렵습니다. 친했던 분들의 귀국 소식도 들려오고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져요.  

우린 언제 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겠어요.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우듬지’라는 줄기가 있대요.

우듬지의 역할은 바로, 나무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결정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즉, 우듬지의 끝이 가지에 이르는 햇빛의 상태를  일분일초 예의 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낌새가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꾼다고 합니다. 그 선택에 주저함이 없다고 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우듬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우듬지는 무엇일까요?

한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고, 성공하는 것이었고, 인정받는 것이었어요. 아이들의 성장일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족이 편안하게 지내는 일인  같아요.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당신의 우듬지는 무엇입니까? ©️선량

언제, 어떻게 시골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결정을 내린다면 미련 없이 그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건 절대 삶의 포기가 아닙니다. 단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죠. 우리의 우듬지에 따라서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안의 우듬지가 얼마나 선명한가에 따라 당장 오늘 하루가, 10년 뒤의  모습이 달라진다. 시련이나 고통 앞에 주저앉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자. 나의 우듬지가 무엇인지 말이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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