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부부에게 필요한 것.

행복일까? 아닐까?

by 선량

요 며칠 무기력증이 찾아왔습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요. 4개월 동안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고, 쇼핑도 못했고, 카페에도 가지 못했고, 혼자만의 시간도 갖지 못했으니, 무기력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은 견딜만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sns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잘 지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글에 공감받았고, 내 글에 공감받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무기력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남편과 둘이서 대화하는 중이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가 이 말을 했습니다.



“자긴 날 이해하지 못해. 그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자기가 겪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힘든 감정이야. 이해받지 못했을 때 많이 서운했어.”


이 말을 들은 후,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쭈욱 빠져버렸습니다. 의욕이 사라져 버렸어요.


남편에겐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남편이 힘들어할 때 전 묵묵히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제 스스로를 챙겼어요. 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편이 힘들다고 해서 나까지 힘들어하면 그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가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그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게 그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가 힘들어하는 감정과 그 불안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전 알지 못했어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남편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전 외로움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외로움 중에 어느 것이 더 강력한 감정일까요?

누가 봐도 불안의 강도가 더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외로움의 감정이 가장 힘듭니다. 외로움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한 없이 바닥으로

내려가게 만들거든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하기도 하거든요.



사실, 감정이라는 게 비교할 수 없는 분야죠. 느끼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감정의 깊이가 다르니까요. 파고드는 정도에 따라 얼마나 힘든지도 달라질 테니까요.


그래서 남편의 말이 몹시도 서운했습니다.

당신이 불안을 겪을 때 난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어요. 내가 그의 불안을 모르듯, 그 역시 내 외로움을 모를 테니까요.

외로움_ drawing by 선량



서로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게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죠. 하지만 결혼해서 살아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입니다. 이 사람이 연애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익숙함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남는 건 서운함 뿐이죠.

우리는 안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이기 이전에 너무나도 다른 남자와 여자이니까요.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첫째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거든요.


“요즘 아빠가 엄마한테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 예전엔 내가 잠들면 엄마랑 아빠가 서로 대화하던데, 요즘도 해?”

“아니... 네가 아빠한테 말 좀 해 줄래? 엄마 신경 좀 써 달라고.”

“엄마가 직접 말하면 되지. 신경 좀 써달라고 말해.”

“그럴까??”

“나이가 들면 서로 신경을 안 쓰게 되나 봐.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러던데.”

“헐.... 그래?”

“엄마, 아빠도 예전엔 서로 신경 썼잖아.”

“지안아 너는 결혼하고 나이가 들어도 네 아내에게 꼭 신경 많이 써 줘야 해.”

“응, 그럴게.”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어요.

아이가 말한 “서로에게 신경 쓴다.” 는 말이 오래된 부부의 사랑처럼 느껴졌습니다.


“나한테 신경 좀 써.”

남편도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말았습니다.




이해는 안 되더라도 공감은 해보려고 해요. 극진한 대접은 못 해주겠지만, 신경은 써 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 꾹 다물고 참지 않을래요. 그게 서로에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가장 안 좋은 방법 같아요.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죠.


이렇게 하다 보면 서로의 감정이 이해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며칠 동안의 무기력증이 사라졌으니, 정말 다행이죠.


“신경 좀 써 줘.”

이제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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