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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9. 2020

나 홀로 여행을 다닌 이유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아침 일찍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세 번의 홀로 산행을 다녀온 뒤였기에 이번엔 바다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하면 배를 타고 섬까지 가보기로 했다.



홀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건 그와 헤어진 후부터였다.  



지하상가에서 중고 필름 카메라를 하나 샀다. 사진 찍는 법은 알지 못했지만, 여행을 가려면 카메라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강천산, 내장산, 마이산을 다녀왔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매번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매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홀로 시외버스를 타고 땅끝 마을로 향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섬으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앉아있었다. 혼자 배를 탄 여자를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드디어 섬에 도착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섬을 둘러보기 위해 서둘렀다.

선착장 근처 바닷가를 거닐고 마을을 보러 걸어 들어갔다.



갑자기 겁이 났다. 여기가 육지가 아니라 섬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두려웠다. 산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결국 섬의 여러 곳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선착장 슈퍼 앞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렸다.

 


3시간을 달려 들어온 섬에서 내가 즐거웠던 시간은 겨우 30분뿐이었다.



왜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왜 하필 섬이었을까?



나는 내가 여전히 용감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날 나는,  두려움만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홀로 여행을 그만 두었다.




보길도에 혼자 여행을 갔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산행에 대한 기억은 생생한 반면, 섬에서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용감했었던 과거가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용기의 한 자락에 보길도가 있었다.


그때는 겁을 잔뜩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혼자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땅끝에서 내 모든 용기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지금,

그때의 내가 그립다. 두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용감했다. 그때의 용기를 다시 내보고 싶다.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용기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려움과 용기는 항상 함께 있었다.


drawing by goo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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