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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1. 2020

안녕, 서울!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에서

그해 여름, 우리들은 서울 모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냈다. 3주간의 대학병원 실습을 위해서였다.

그 실습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촌스러운 전라도 말투가 특히 걱정 되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가서도 햇빛에 얼굴이 탈까봐 걱정 했다. 촌스러워 보일까봐.....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나에게 서울은 무서운 곳이었다.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는 게 무서웠고, 버스를 탈 때 마다 긴장을 했다.  익숙한 곳이 아니면 절대 가지 않는 소심한 성격도 한 몫 했다.


토요일 오후, 실습이 일찍 끝난 날, 친구와 함께 근처 대학가에 가보기로 했다. 두려웠지만 친구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시골출신이었지만,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서울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간 곳은 여러 가게들이 모여있는 쇼핑 거리였다. 옷가게, 신발가게가 정말 많았다. 소심한 나와 다르게 친구는 샌들을 하나 사야겠다며 가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 신어보고 둘러보고 있었는데,

“안 살꺼면 나가요.”

가게 아저씨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겁 먹은 우리는 결국, 신발을 하나도 사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 기숙사로 돌아오고 말았다.




네팔에서 2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보니, 광주에는 더이상 집이 없었다. 셋째 언니는 결혼해 서울로 이사를 갔고, 할머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셨다. 가족이 아무도 없는 광주에서 혼자 살 용기가 없어 결국 언니들이 살고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여의도 모 병원에 입사해 일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며칠 후  선임 간호사가 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일 하지 말아요. 갈 수 있을 때 빨리 나가요. 나도 1년 경력 쌓으려고 참았는데, 정말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어요. 내가 왠만해선 이런 말 안하는데,

진짜 여기 병원 이상해요. 원장도 완전 이상해요. 

근데 대외적으로는 완전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어요.”


함께 일하던 모든 간호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나의 미래가 그들 같을까봐 겁이 났다. 그리고 두려웠다.

결국 일주일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서울이 두려웠다. 서울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곳은 내가 있어야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들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 후, 소아과에서 3개월을 일한 후 비영리단체로 이직을 했다. 그곳에서는 이동진료를 다녔는데,

외국인 근로자, 저소득 어르신들, 여성들, 아동들을 찾아가 진료를 했다.


그제야 나는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서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였다.

서울을 두렵다고 생각했던 시간 내내, 나는 그곳을 즐기지 못했다.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이방인처럼 살았다.



조금씩 서울 사람이 모두 무서운 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적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서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우리 한국 가면 서울 살거야?”

“아니, 못 살아.”

“왜?”

“집값이 너무 비싸서.”

“그럼 어디로 가?”

“글쎄... 시골로 갈까?

“이모들은 다 서울 살잖아.”

“이모들은 집이 있으니까.”

“우린 왜 집이 없어?”

“이모들도 다 전세야. 진짜 집이 아니야.”

“그렇구나.....”

서울에 있는 그 많은 집들은 다 누구의 집일까?



서울은 다시 무서운 곳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곳이다.

모든게 좋아 보이다가도 힘들어 보이고,

다들 행복해 보이다가도 찌들어 보인다.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란  알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진실인 곳에서 살고싶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서울엔 그냥 놀러만 가야지.


drawing by goo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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