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말 걸 그랬지.

by 선량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 반.


내가 쓴 글은 종이책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리기도 했고, 또는 냄비 받침이 되기고 했을 것이다.

내가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 그램 등의 sns에 쓴 글들은 차곡차곡 쌓여있다.

매년 7월 초가 되면 입을 여름옷이 매번 없어서 옷을 사 듯, 내 글 역시 매번 써서 저장하지만, 꺼내 쓰려니 입을 만한 게 없다.



어느 글에서,

“작가의 글쓰기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가 가진 이야기가 중요하다.”

라는 말을 읽고,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뼛속 깊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부인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뭐라도 쓰면, 쓰기만 하면 저절로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될 거라고 주문을 걸었다.

3년이 넘게 글을 쓰다 보니, 분명 글 쓰는 속도는 빨라졌다. 망설이지 않고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책을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골라 써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경험들을 모두 써버리고 나니, 더 이상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떠오르지 않는 소재를 고민하며 오늘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자책했다.

글을 쓰라고 시킨 사람도 없고, 꼭 써야 할 의무도 없건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채찍과 독자라는 당근은 나를 자꾸만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나는 왜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글을 쓰지 말 걸 그랬나 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쓸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지도 않았을 텐데, 평범하기만 한 내 일상이 지겹게 느껴지지도 않을 텐데, 뭔가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텐데.


글을 쓰지 않았다면, 브런치 조회수 같은 거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인스타 팔로워 수 늘리려 애를 쓸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나만의 경험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혼자 책을 만드는 수고도 하지 않았을 텐데.

글을 쓰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는 어쭙잖은 충고 따위 남발하지도 않았을 텐데, 책을 낸 작가랍시고 작가 코스프레도 하지 않았을 텐데.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과거의 나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소심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sns 창문을 먼저 두드리는 일도, 내가 쓴 글을 자랑할 일도, 남부끄럽게 내가 만든 책을 대놓고 홍보해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수만,

수천 명의 글 쓰는 사람들 중에 굳이 내가 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나는 왜 괜히 글을 써서, 글 쓰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괜히 눈깔사탕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처럼, 글쓰기의 맛을 알아버려서, 쪽쪽 빨다 남은 사탕을 버릴 수도 없다.



괜히 낮 뜨거운 과거의 글을 지우고 지워보지만,

내 옷 장 속에 얇은 여름옷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은 것처럼, 내가 쓴 글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 진다.



그런데 나는 이 고민을 하면서 또 쓰고 있으니,

습관이 된 건지, 중독이 된 건지.

내가 글을 붙잡고 있는지, 글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 건지.

인연은 돌고 돌아도 언젠간 만나는 것처럼,

나도 결국엔 글쓰기를 만나게 될 운명이었을까?



3년 전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왜 좀 더 빨리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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