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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11. 2020

17. 파란 하늘 펜션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설화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니,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휴대폰 속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미영이었다. 아침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는 친구 때문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응.”

“일어났어?”

“응, 방금. 너는?”

“나야 진작 일어났지. 애들 유치원 바래다주고 왔어. 너 아침 안 먹을 거야?”

“내가 알아서 먹을게. 걱정하지 마.”

“우리 집으로 와. 밥 있어.”

“아휴, 됐어요, 사모님. 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펜션에서 아침밥 주는 데가 어딨냐?”

“에이, 친구사이에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얼른 내려와.”

“아니야. 나 좀 씻고 나가보려고. 여행 온 거니까.”

“그래, 알았다. 너 편할 대로 해.”

미영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느라 늦게 잠들었지만,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평일이라 펜션 손님은 없었지만, 가족들 아침을 준비하고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한참 손이 많이 가는 7살 여자아이와 5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늦잠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영은 아직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설화가 마냥 부러웠다. 어린 나이에 대수를 만나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는, 자신이 가장 잘 나가는 여자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일찍 결혼한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하지만 미영은 설화에게 부러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가장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화 앞에서 더욱 엄마 노릇을 하고 아내 노릇을 했다. 아니, 보여주었다. 설화가 부디 자신을 조금이라도 부러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영의 남편 대수는 대기업에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회사였지만, 자신이 원했던 환경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어린 두 아이와 자기를 두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남편이 미영은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서울을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예쁜 펜션을 차려서 잘 꾸리면 돈도 벌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꿈과 현실은 매우 달랐다. 이미 우후죽순 생겨난 펜션들이 많았고, 그들이 자리 잡은 자리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기에 인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수는 손님이 없을 때면 펜션을 미영에게 맡겨 두고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기도 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불안정하고,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대수는 고향으로 내려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는 정글 같은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설화는 천천히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통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동피랑에 가 볼 생각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직접 가 볼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펜션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바다가 보였지만, 펜션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뒤로 낮은 산이 있었다. 설화는 파란 하늘 펜션을 나서며 셀 게스트 하우스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꼭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일 통영 시내는 매우 한가해 보였다. 설화는 동피랑 입구에서 꿀이 잔뜩 발라진 꿀빵과 아메리카노를 사서 손에 들고 천천히 동피랑을 올랐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이네 멋들어진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여행객이 한데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설화는 그들을 곁눈질로 쳐다본 후, 계단을 올랐다. 벽화의 그림을 하나하나 눈으로 새기며 위 로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벽화에 써진 글을 보고 설화는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의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매우 단순한 그 질문은 설화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 것도, 그리고 여기 통영에 온 것도 모두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설화를 이곳까지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설화는, 그렇게 한참 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낯선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말을 쓰는 사람 세명이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설화는 순간 저들이 인도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화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들도 설화를 바라보았다. 설화는 그 순간을 모른 척해야 할지, 아니면 붙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당신의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벽화가 설화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설화는 그 질문에 답을 하기로 결심했다.

“hello, nice to see you. Where are you from?”

설화의 질문에 남자 한 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쌔요. 조는 네팔에서 왔고, 재내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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