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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8. 2019

가장 고마운 존재, 아야

“실삐~아쇼~”


다카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아야’이다. 우리말로 하면 가사 도우미, 영어로는 메이드, 방글라 말로는 아야.


아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파트타임 아야, 풀 타임 아야, 슬리핑 아야, 요리가 가능한 쿡 아야, 아기만 돌보는 내니 아야.

파트타임 아야는 하루 두,세 시간만 와서 청소나 빨래, 설거지만 해주는 아야이고, 풀타임 아야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한다. 슬리핑 아야는 말 그대로 집에서 숙식을 하는 아야이다.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선호하는 타입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요리가 가능한 쿡 아야는 월급이 조금 더 비싸다. 슬리핑 아야는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오히려 싼 편이다.

초보 아야는 7,000다카(10만원 정도)면 쓸수 있고, 숙련된 아야는 20,000다카 정도 한다.


아야가 있어서 다카의 삶이 조금은 편하다. 집에서 귀찮은 청소와 빨래등 집안일을 해준다. 현지인들과 말이 안 통할때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장보는 일, 아이들 픽업 등 여러가지 일들도 해준다.


그런데, 이런 아야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 바로 뭔가를 훔쳐가거나,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을 해서 신뢰가 깨져 결국, 좋지않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아야를 너무 부려먹는 집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나기도 한다. 아야들끼리도 정보를 공유하는데, 좋은 집과 절대 가지 말아야 할 집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자주 아야가 바뀌는 집은 일단 좋지 않은 소문이 난다.)



우리가 다카에 살때 일했던 아야는 ‘실삐’이다. 실삐는 우리가  치타공을 떠나기 전, 인연이 닿았다.

치타공을 떠나기 며칠 전, 친한 선생님 집에 놀러를 갔다. 그 선생님 가족은 다카에 있다가 치타공으로 내려온 분들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선생님의 전화벨이 울렸다.  

“실삐, 잘지내니? 왠일이야?”

“마담, 저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어요. 혹시 아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좀 시켜주세요.”


그분들이 다카에서 지낼 때 실삐는 그분들의 아야였다.

선생님은,

“난 이제껏 살면서 실삐같은 아야 못 만나 봤어요. 진짜 정직하고 일도 잘해요.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그런데 월급을 좀 높게 부르네. 12,000달래요. 하지만 진짜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카에 오자마자 실삐를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말처럼 실삐는 정말 정직하고 착실한 아야였다. 눈치가 빠르고, 말하지 않아도 일을 알아서 했다.

다카 대부분의 아야는 “갸로”부족이다. 방글라데시에는 지역에 따라 여러 부족이 있고 고유의 언어가 있다. 공용어는 뱅골어지만, 자기 부족들끼리는 본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실삐 가족도 갸로 부족이다. 갸로는 모계중심이다. 그래서 남편이 처가집에서 함께 사는 경우도 많고, 남편보다 아내들의 생활력이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 카톨릭이거나 크리스쳔이다. 갸로 부족들의 본 지역은 남서쪽, 인도 국경선과 가까운 곳인데 최근에 먹고살기 위해 다카로 많이 유입이 되었다. 대부분 남편과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두고 부인들은 다카 도시에서 일을 해 돈을 보내준다. 그들 대부분의 일자리는 아야이다. 슬리핑 아야의 경우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에 집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상부상조 할 수 있다. 그러다 아이만 친정이나 시댁에 맞겨두고 남편도 도시로 올라와 아파트 경비나 작은 상점의 점원, 또는 릭샤왈라 등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둘이 돈을 벌어서 아이에게 돈도 보내주고, 학용품도 보내주기도 한다. 둘이 돈을 좀 벌어 방 한칸 구할 수 있게 되면 드디어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


실삐는 처음 다카에 왔을 때 남편과 둘이 왔다. 하나 있던 딸을 친정에 맞기고 왔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이 주로 사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에서 가장 저렴한 방을 구해 살았다. 그래봐야 거의 공동체 생활이나 다름없다.

“마담, 처음 그 집에 살 때 침대에 벼룩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실삐는 가끔 처음 다카에 왔을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회상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실삐와 실삐 남편은 매우 착실한 사람들이었다. 실삐는 아야일을 처음 시작했을때 영어도 전혀 못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라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곧 그 일이 익숙해졌고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일해 마담의 신임을 받았다. 나중에는 시골에 있던 딸도 데려오고, 아들도 한명 더 낳았다. 우리집에 왔을때는 그 아들이 2살때였다. 실삐가 출근을 하면 그의 남편이나 14살이 된 큰딸이 아이를 돌보았다. 나중에는 아들을 봐 줄 사람이 없어서 시골에 있던 친정 엄마를 데리고왔다.


2016년, 7월 1일, 다카 시내 중심에 있던 유명 이탈리안레스토랑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그 때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일본인들, 이탈리아인들, 그리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사건은 방글라데시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방글라데시를 떠났다. 여러 외국 기업들이 적자를 입었다. 그리고 많은 아야와 드라이버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실삐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주위의 여러 친구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남일 같지 않았다. 내 마담도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러다 실삐는 한가지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담, 마담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좀 걱정이 되요. 그래서 우리 시골에 작은 가게를 살까해요. 아는 사람이 우리한테 좀 싸게 팔겠대요. 가게에서 옷감도 팔고 야채도 팔고 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은행에 5만 다카를 모아놓았어요. 그런데 그 가게를 사려면 9만 다카가 필요해요. 혹시 4만 다카를 빌려주시면 매달 월급에서 2천 다카씩 갚을게요.”

많은 아야나 드라이버가 보스나 마담들에게 돈을 빌려가곤 한다. 하지만 빌린 돈을 다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난 적금을 들어 5만 다카을 모았다는 사실도 놀라웠고(대부분이 돈을 모으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선뜻 돈을 빌여주었다. 결국 실삐도 그 돈을 다 갚지 못했다.  남은 돈은 실삐의 퇴직금으로 탕감해 주었다.




실삐는 매우 성실히 일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르고

뭐든 잘 배웠다. 나중에는 한글말도 제법 할 줄 알게

되었다.

“소은, 앉아. 밥 먹어.”

“지안, 신발 신어.”

“ 엄마 없어.”

“여기 있어.”

간단한 말을 할 줄 알게 된 실삐는 아이들과 한국말로, 영어로, 뱅골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


다카를 떠나기 전, 실삐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쳐 주었다. 볶음밥이나 김밥이나 미역국, 김치, 깍두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면 제법 그럴듯 하게 만들어 냈다. 나중에는 삼각김밥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실삐는 어느 한국인 가정에서 무한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실삐, 아쇼(이리와봐)”

요즘은 가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 다카에서 이렇게 말하면 실삐는,

“예스, 마담.”

하고 달려왔다. 그리곤 다 먹은 그릇을 가져갔다. 또는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방을 정리하고, 빨래를 해주었다.

지금은,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실삐가 무척이나 그립다.

아마 다시는 이런 아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실삐는 아야이기도 했고, 뱅골어로 대화할 수 있는 선생님이자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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