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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28. 2020

1. 조금, 서툰 가족입니다.

1장. 평범한 일상 속 행복찾기

코로나의 여파로 3월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었습니다. 곧 끝나겠지, 희망에 찬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도 확진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갔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며 온종일 네 식구가 집에서 지내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낯설기만 했던 이런 환경이 곧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화요일, 둘째 아이의 수업시간은 12시 30분이었고, 첫째 아이의 수업시간은 1시 30분이었어요. 오전시간에 여유가 좀 있어서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릴때는 몰입이 너무 잘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씩 앉아있곤 합니다. 허리가 뻣뻣해지고 엉덩이가 시큰거리면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필 여유가 생깁니다. 이제 막 그림에 입문했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그 시간을 아끼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거실 한 구석에 인형을 잔뜩 늘여 놓더니, 인형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싱크대에 담가 놓은 그릇들이 쌓여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어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이 말했습니다. 

“설거지는 내버려두어. 내가 할게.”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요. 마음 놓고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한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둘째 아이의 영어 선생님한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수업시간에 영어 받아쓰기를 할테니 노트를 준비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부랴부랴 온라인 클래스룸에 들어가 과제를 확인했어요. 언제 올라왔는지도 모를 과제들이 수두룩 있었습니다. 익숙해져버리다 못해 나태해지기까지 해버렸네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놓치고 만 것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소은아, 받아쓰기 공부할까?”

“나 하기 싫은데.......  오빠랑 더 놀고 싶은데...”

잠시 고민을 하다, 저는 다시 펜을 들고 그림에 몰두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나도 하기 싫다. 놀아라. 네가 알아서 해.”

결국, 아이들은 놀고 저는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렸습니다. 설거지를 해주겠다던 남편은 안방에서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12시가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슬슬 점심을 준비하러 주방에 갔습니다.

아뿔싸.......

설거지를 하지 않았네요. 밥통엔 밥도 없었습니다. 곧 온라인 수업 시작인데, 점심도 먹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냉동실에 있던 삶은 스파게티 면을 꺼내 치즈를 뿌려 둘째에게 먹으라고 내놓았어요.  (그때까지도 남편의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스파게티(삶은 면에 모차렐라 치즈만 뿌린 스파게티)를 옆에 두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스파게티를 오물거리며 받아쓰기하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회의가 끝난 남편에게 설거지를 넘기고 점심밥을 했습니다. 곧 첫째 아이의 프랑스어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었어요. 부랴부랴 볶음밥을 만들어 그릇에 담아 들고 나가려는 찰나, 그릇이 제 손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사기로 만들어진 밥그릇은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설거지를, 둘째는 식탁에서 받아쓰기를, 첫째는 거실에서 밥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찰나의 순간, 제 사고의 경계는 빛의 속도로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떠나 세 명의 언니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방 두 칸짜리 3층 집. 하필 대학교 앞이라 봄이 되면 체류탄 냄새가 창문 틈을 타고 들어왔어요. 치약을 눈과 코 아래에 바르면 덜 맵다는 말을 듣고, 언니와 함께 따라 했다가 치약때문에 너무 매워 눈물 콧물을 쏙 빼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릇이나 물병을 깨트렸어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다 손에서 미끄러져 깨트렸고, 설거지를 하면 매번 접시 하나씩을 깨트렸어요. 그런데, 할머니도 언니들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혼내질 않았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된 제가 안쓰러웠을까요? 아니면 정서적으로 불안정 했다는 것을 가족들이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게 의아합니다. 왜 아무도 날 혼내지 않았는지……. 

다시 빛의 속도로 현실로 돌아온 저는, 깨진 그릇 조각을 빗자루로 쓸어 담았습니다.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설거지를 계속했고, 둘째 아이는 계속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볶음밥을 다시 담아 첫째 아이에게 가져다주고 컴퓨터를 열어 수업 준비를 도와주었습니다. 실수투성이의 어릴적 내 모습이 현실로 소환되어 잠시 머물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재미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바라볼 때, 그 마음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요? 

“별일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서툴기만 한 저에게 크나큰 위로를 줍니다. 만약 어렸을 적에 가족들이 비난 석인 말투로,

“너는 왜 그 모양이니? 또 깨트렸니? 아까운 그릇”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도 전 완전 다른 어른이 되었을 겁니다.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인생은 살아볼만 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를 조금은 어른다운 어른으로 키워준 것은, 가족들의 시선이 내가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저에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10년 차 엄마임에도 여전히 서툴기만 합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과, 집안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게을러진 모습을 보이고 맙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남편은 저에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서툴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해도 눈감아 주기에, 모른 척해주기에, 그래서 더욱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그릇은 산산조각 나 사라졌지만, 분주했던 내 마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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