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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28. 2020

19.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4장. 나는 오늘도 행복을 선택했다. 

 

이틀 전에는 제 생일날이었습니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신경 써서 보내준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습니다. 케이크 가운데엔 딸이 좋아하는 망고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후~ 한 번에 그 많은 촛불을 껐습니다. 포크를 들고 다 같이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생크림 케이크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울컥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아 뭐지....... 나 왜 이러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엄마 왜 울어?”

  케이크를 먹다 울고 있는 날, 가족들은 이상하게 쳐다봤습니다. 화장실로 뛰어가 세수를 했어요. 벌게진 내 얼굴이 실연당한 사람의 얼굴 같았습니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포크를 들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눈물을 닦지도 않고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딸이 건네 준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케이크를 삼켰습니다.

  “너무 기뻐서 우는 거야?”

  아들이 물었습니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 우울증’이 가장 맞겠네요.


  우울한 감정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전날 저녁, 생애 첫 강의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공헌감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쫌 잘 산 것 같다며 으쓱해졌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진행했던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반짝이는 옷은 사라지고, 무채색의 옷만 남아있었습니다.

  밝은 초록색이었던 소파는 칙칙한 카키색이 되었습니다. 여러 번 이사하느라 힘들었는지 다리 하나가 흔들렸습니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습니다. 과자 부스러기가 소파 깊숙이 들어가 청소하기 힘든 날들이 지속되었습니다.

  결혼할 때 산 꽃무늬 이불은 여기저기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틔어 나온 솜을 볼 때마다 저걸 꿰매야 하나, 버려야 하나, 하나 새로 사야 하는데, 살 곳은 없고, 한국에 가서 사 와야 하는데....... 매번 똑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외부인을 못 만난 지 3개월째. 온라인으로 얼굴을 보고, 카톡으로 매일 대화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거리는 손을 내밀면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비대면 만남이 오래될수록, 저는 더욱 외로워졌습니다.

  친구와 카톡을 하다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컥 쏟아진 눈물을 애써 참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도 내 감정이라는 것을 이젠 알고 있습니다. 

  ‘언제 이 생활이 끝날까? 코로나가 사라지긴 할까? 한국엔 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분노의 시간을 지나 곧 끝날 거라는 현실 타협의 시간을 넘어 드디어 자포자기의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이 생활은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하루 세 끼 밥을 하는 일도, 설거지를 하는 일도, 두 아이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과제를 하는 일도 일상이 되었지만, 해도해도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적응하고 싶지 않다는 게 맞겠네요.


오래전에 사용하던 노트를 꺼냈습니다. 그곳엔 3년 전 내가 써 놓은 글과 필사한 글이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상태 중 하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상태다. 특별히 그 대상이 사람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가 일찍이 말했듯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한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는 관심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행복이 고통의 완벽한 부재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부부 생활이란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행복은 비장한 전투에서 얻어내는 승리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 삶에 우연히 찾아와 준 것들에 대한 발견이다.”


최인철 교수님의 ‘굿 라이프’ 책을 읽고 필사한 내용이었습니다. 행복하다고 해서 우울한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우울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울한 감정도 공헌감이나 뿌듯함 못지않게 주요한 감정입니다.  이 모든 감정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진짜 행복한 것이겠죠.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도 몇 문장의 위로로 벌떡 일어날 힘이 생기는 거 보니 말입니다.

오랜만에 펜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멈추어 있었던 그림을 다시 그렸습니다. 선을 긋고 패턴을 그리는 몰입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우울한 감정은 인사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에 글을 입혔습니다.  글과 그림을 보며 다시 웃었습니다.  

이 생활도 언젠가는 인사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그땐 다 함께 소리를 질러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아주아주 큰 소리로.




행복이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비의 날개짓.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아주 작은 행복이 모여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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