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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8. 2020

정상 말고 그 아래

글로 모인 사이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인도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 영상을 찍어 설명을 해주고, 그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심장은 두근두근, 콧구멍은 벌렁벌렁,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가 되었다.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SBS 모닝 와이드 작가였다.

세상에나 공중파 방송이라니, 게다가 모닝 와이드라니….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생기는 것일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방이 터지는 걸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어디에 가서 어느 영상을 찍고, 인도 코로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분명 나에게 플로스 요인이 될 것이다. 게다가 출연료까지 준다는데 마다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결국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제야 내 안에 머물러 있던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감정과 생각이 첫눈처럼 소리 없이 내렸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높게 쌓인 눈 위의 고양이 발자국처럼 자국 자국 남는 걸 경험했다. 여태껏 글을 쓰지 않고 살았던 과거가 후회되기까지 했다. 글을 쓰기 전의 나와 쓴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욕심이 생겼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쓴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책 판매 지수가 더 높아지기를, 책이 더 많이 팔리기를 바랐다.

‘내가 조금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조금 더 내 이름이 알려지면 잘 팔리는 글이 될까?’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가 크건 작건 일단 해보는 걸 선택했다. 더 잘 팔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잘 팔리는 글은 도대체 뭘까?

재밌는 글, 유익한 글, 정보가 가득한 글, 심금을 울리는 글, 상상할 수 없는 소재의 참신한 글.

이런 글들을 내가 쓸 수 있을까?



네팔에 살 때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일주일 걸려 천천히 올라갔다 일주일 걸려 천천히 내려오는 코스였다.

EBC는 사실 에베레스트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은  아주 저 멀리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뿐.

우리 같은 일반인은 정상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 주위를 걸었다.

정상의 높이는 약 8,800미터이고,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EBC는 약 5,500m이다. EBC 역시 결코 낮은 곳이 아니었다. 고산 증상이 수시로 생기고, 몸을 살짝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나는 이제 겨우 EBC에 오를 수준인데, 마음속에선 저 산 꼭대기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가을 햇살이 포근한지도 모른 채 지나쳤다가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포근했던 가을 햇살 한 줌을 떠올린다.

높은 산에서 가장 소중한 건 그동안 수없이 들이마셨던 산소였다. 나는 산소의 소중함을 EBC에 가서야 깨달았다.




인터뷰 요청 메시지를 받은 그날,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기회를 잡아볼까? 공중파 방송에 나가 볼까? 멋지게 영상을 찍어볼까? 이걸로 나를 더 홍보해 볼까?


하지만, 생각의 끝에 다다른 곳은 내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에베레스트 정상이었다.


인도의 모습을 대충 찍어 영상을 만들고, 내 생각대로 인터뷰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일반적인 인도의 모습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인도의 진짜 코로나 상황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활 반경은 집, 학교, 공원, 마트가 전부이다. 인도 관련 뉴스도 잘 보지 않으며, 더 이상 코로나 뉴스도 찾아보지 않는다. 하루하루 지극히 좁은 동선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잘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중요한 것을 놓칠 것 같았다.


한 줄의 문장이 주는 힘은 매우 크다.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쓴 글이 누군가에겐 아픔이 될 수 있고, 가볍게 쓴 글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말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에 인터뷰를 했다가 내가 떠든 말이 공중파 방송을 타고 전국에 전해지면, 그게 인도 전체의 진실이 돼버릴 것 같았다.


올라갈 수 없는 정상은 이제 그만 올려다보기로 했다. 대신 낮은 언덕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려보고자 한다. 들숨과 날숨의 소중함을 알고 쓴 글은 떠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잘 팔리는 글 말고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걷다 보면, 에베레스트 정상은 아니더라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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