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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5. 2020

다리가 부러진 소파

글로 모인 사이


겨울이 되니 바닥이 영 차갑다. 수면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꺼냈지만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수면양말도 슬리퍼도 거뜬히 뚫고 발바닥으로 전해진다.

누가 인도는 겨울이 없다고 했던가?

한국만큼 추운 건 아니지만, 한국처럼 보일러가 없다 보니 추운 건 매 한 가지다. 더울 땐 차가운 바닥이 그렇게 좋더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차가운 바닥을 피해 소파에 몸을 눕혔다. 쿵 하고 소파 한쪽이 기울어졌다.  아슬아슬하더니, 결국 한쪽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몸을 일으켜 소파 한쪽을 들어 올려 낑낑대며 빠져버린 다리를 다시 끼워 맞췄다. 아이들이 소파에서 뛰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견뎌줄 것 같은데, 과연 괜찮을까?





방글라데시에서 비싸게 산 소파는 뭄바이로 한 번, 뉴델리로 또 한번 이사를 하느라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영롱한 초록색이었던 때깔은 칙칙한 카키색으로 변했고, 푹신했던 쿠션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다 흘린 부스러기들이 사이사이에 들어가 때를 장식하고, 아무리 닦아도 빛이 나지 않는다.


버리고 하나 사지, 웬 청승이냐고?


새로운 소파를 사지 못하는 이유, 덜덜 거리는 김치 냉장고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 어렸을 적에 읽던 그림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외 생활을 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아니, 결혼 후 신혼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그때는 둘 다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살림살이도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 딱 2인분의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 이불만 준비했다.


말이 씨가 된 건지, 꿈이 현실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결혼 1년 만에 한국을 떠났고, 그 뒤로 쭈욱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사는 동안 총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가까운 거리로 이사한 게 두 번, 도시를 옮겨 이사한 게 두 번, 나라에서 나라로 이사한 게 한번. 이사를 할 때마다 내 살림살이는 엉망이 되었다. 특히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이사할 때는 두 달이 넘게 걸렸는데, 살림살이에 곰팡이가 하얗게 폈고 그릇은 깨져 있었다.

한국처럼 포장이사가 있긴 하지만, 포장만 잘한다. 포장을 너무 잘해 푸는   일이었다.  풀고 정리하는  또한 모두  일이었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이사를 꿈꾼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의 낯선 거리가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기분을 한번  느껴보고 싶다.

호기롭게 오래된 살림살이를 모두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손때 뭍은 소파가, 찢어진 동화책이, 실밥 풀린 이불이 못내 아쉬워 다시 차곡차곡 담아 가져 갈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로 가게 될까?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된다면, 모든 짐을 버리고 가겠노라 선언했다. 소파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책들도 모두 버리고 모두 새 것으로 사사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엄마, 그러면 안돼. 아직 쓸 만 해.”

“그렇게 막 버리면 안 돼. 난 다 가져갈 거야.”

“엄마, 책이랑 장난감은 절대 안 돼. 절대 버리지 마.”

 몰래 버리려고 쓰레기봉투에 담아 두면, 어느새 눈치채고 슬금슬금 빼가는 아이들.

설마, 한국 갈 때도 모두 가져가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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