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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3. 2020

종이비행기를 날려보자

글로 모인 사이

남편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이민 가방에 설렘 반, 두려움 반을 가득 쑤셔 넣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두려운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이다 덮치곤 했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꼭꼭 숨기고 우리 앞에는 희망에 찬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곤 했다. 감정을 지체시키거나 꾸밀 수 있는 건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꾸밈이 없었다. 설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새로운 학교에 간 날,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엄마, 나 떨려. 친구가 있을까?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한국 친구도 없고. 어떡하지. 잘할 수 있을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잘할 수 있지. 친구는 또 사귀면 되고, 첫날이니까 모두 똑같을 거야. 걱정하지 마. 잘할 거야.”

근거도 없는 확신을 남발했다. 그건 주문과도 같았다. 아이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잘 적응해 주기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기를 바라면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새로 입학한 뭄바이 학교에는 한국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다들 프랑스어로만 대화를 했다. 방학 동안 한국에서 지내다 프랑스어를 다 까먹은 아이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거나, 질문에 겨우 예, 아니오로 대답하거나, 쉬는 시간에 벤치에 앉아 친구들 노는 걸 바라보는 게 다였다. 말보다 생각이 더 많고, 적응이 느린 아이는 친구들 한 명 한 명, 선생님 한 명 한 명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나처럼 두려운 감정을 지체시키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의 마음이 두려움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 때는 종이비행기를 날린 후부터였다.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종이접기를 많이 해본 아이는 종이비행기도 제법 잘 만들었다.

학교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고 했다. 그 비행기가 친구들 사이를 뚫고 10미터를 날아갔을 때, 아이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어떻게 접었는지 가르쳐 달라고 친구들이 아이에게 먼저 다가왔다. 그 뒤 아이는 날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렸다.


인도에 코로나 확진자가 샐 수 없이 많아졌다. 마트는커녕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도 두려워졌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회사에도 나가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잠식되어 하루하루 코로나 뉴스를 읽고, 확진자가 몇 명인지 헤아리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혹시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생긴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이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사람에겐 모두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시간은 객관적인 숫자가 아니라 주관적인 경험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코로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각자 서로 다른 시간을 경험한다.


나도 아이처럼 종이비행기를 접고 싶었다. 두려운 마음을 접고, 즐거움과 희망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싶었다.

내 종이비행기는 뭘까?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건 어쩌면 복잡한 현실을 잊고 싶은 회피의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글과 그림으로 몰입하는 그 시간을 나만의 종이비행기를 접는 시간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이 힘든 시간이 지나면, 나에겐 방 안에 가득 쌓인 종이비행기가 남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 높이, 저 하늘 높이 힘껏 날릴 것이다.

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있는 그리운 엄마를 만나러 갈 것이다. 엄마를 만나면 엄마 품에 꼭 안겨서 눈물을 훔칠 테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그랬던 것처럼.

그럼 엄마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희망에  말을  주겠지. 

엄마란 두려움과 걱정을  접어둘  아는 존재이니까. 



당신의 종이비행기는 뭔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함께 하늘 높이 날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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