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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9. 2020

나는 브런치가 고맙고, 브런치가 밉다.

브런치에게 전하는 고백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딱 2년이 되었다.


2년 전, 인도 뭄바이에서 홀로 글을 쓰던 내가 우연히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다는 경계선과 브런치 작가라는 그럴싸한 타이틀 덕분에 정성을 다해 작가 신청을 했다.

이미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고, 브런치 작가 선정을 위해 저장해 둔 원고도 세 개나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작가 신청을 했고, 신청한 지 이틀 만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혼자 글을 써서 처음으로 합격한 것이 브런치였기 때문에 그 애정은 심히 남달랐다. 하루에도 여러 편의 글을 썼고, 쉬지 않고 발행을 눌렀다.

초심자의 행운처럼 뭄바이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다음 메인에 올랐고, 그중에 한 편의 글이 꽤 인기를 얻었다. 급기야 브런치 카카오톡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송되는 기회까지 얻었다. 덕분에 구독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만 쓰면 어떤 좋은 기회들이 바람처럼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기회들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큰 한방, 이를 테면 브런치 북 대상을 탄다던지, 내 글이 출판사 관련자의 눈에 띄어 출간 기회를 잡았다던지 하는 역사가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러 것이 내가 쓰는 글이란 인도, 아이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남들에 비해 콘텐츠가 많이 빈약했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이 나에게도 언젠간 생길 거란 기대감으로 꾸준히 글을 썼다.


더욱이 독자들의 댓글과 피드백은 외로운 나날에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했고, 내 글쓰기의 역사를 멈추지 않게 도와주었다.

꾸준히 글을 쓴 덕분에 출간의 기회도 맛보았다. 백번 넘는 투고 끝에 기획 출간을 했고,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들을 모아 부크크에서 POD 출간도 경험했다. 비록 판매지수가 높진 않지만, 출간의 경험 덕분에 마미 킹 글 멘토가 되었고, 강의도 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하게 시작했던 작가님들이나 나보다 먼저 브런치를 시작한 작가님들이 조금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계속 글을 써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들 안 모양이다.

브런치에서 밀어주는 글은 새로운 작가들, 고부갈등, 남편과의 이야기, 음식 이야기, 해외생활 이야기 또는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쯤은 이제 알 수 있다.

인생을 고민하며 써 내려간 글은 메인에 절대  오를 수 없다. 좋은 문장과 수려한 비유로 써 내려간 글 역시 인기가 없다. 그건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힘들수록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듯,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뭔가 자극적인 글을 더 찾아 읽게 된다. 그게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글을 쓴 지 2년 즈음되면 하나 둘 모습을 감춘다. 나 역시 그 기로에 놓여있다. 나만의 행보로 가야 할지, 계속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지금은 브런치에 대한  기대가 희망고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브런치만 바라보고 브런치에만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브런치 외에 다른 활동들을 하고 있다. 


마미 킹 출판 살롱에서 계속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는 글을 처음 쓰는 분들에게 글을 시작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하고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원고 편집과 교정 그리고 최종 POD책으로 만들어서 출간하는 일을 한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보람과 성장을 동시에 느끼며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글쓰기와 라이브 방송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글쓰기와 말하기는 크게 관련이 있다. 강원국 작가님의 신간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도 나온 것처럼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글을 잘 써야 하는 것이다.

라이브 방송에서 할 말을 생각하는 것과 써야 할 글을 생각하는 뇌는 하나인 것 같다. 내가 말했던 것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원고로 옮기기도 하고, 할 말을 미리 작성한 후에 라이브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브런치에 글을 쓴다.

최근엔 혼자 외로이 쓰던 습관에서 벗어나 스테르담작가님 공동 매거진에 참여했다. 여러 작가님들의 공동 매거진 모집 글을 보았지만, 스테르담님과의 공동 매거진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장 오래 브런치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브런치 대상을 타고, 유명해지고, 여러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시작한 많은 작가님들이 나중엔 브런치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만약에 내가 브런치에서 유명해지더라도 절대 떠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으로 여전히 브런치에 활발히 글을 쓰고 계신 작가님이 바로 스테르담 작가님이셨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찐하게 받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홀로 쓰는 글은 외롭기도 하지만, 방향을 잃고 해메이기도 하니까.


조회수가 많이 나오진 않지만 여전히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일상 에세이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미 써놓은 글을 모아 원고를 만들고 있다.



브런치는 분명 글쓰기에 가장 좋은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느꼈던 합격의 설렘을 잊게 된다. 바쁜 일상과 다른 중요한 일에 밀려 더 이상 브런치 글을 발행하지 않게 되고, 브런치보다는 피드백이 빠른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브런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내 글을 가장 많이 읽어 준 곳이 이곳이고, 날 작가로 만들어 준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3년 4년 5년이 지나도 브런치를 떠나지 않는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작가로서 유명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떠나진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브런치가 얄밉기도 하지만 고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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