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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31. 2021

5. 다섯, 취미

마흔, 둘의 단어

이력서 또는 지원서에 빠지지 않고 써야 했던 건 취미와 특기였다. 쓸 때마다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진짜 취미와 특기가 합격 여부에 영향을 주는지 의아했지만, 고심하며 썼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취미는 독서다. 취미가 독서라고 쓰면 뭔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너무 평이한 취미라고나 할까? 특색 있는 사람이 되려면 벨리 댄스나 필라테스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다못해 악기라도 하나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주부가 된 이후론 이력서를 써 본 적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여전히 특별한 취미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취미 하나를 갖기 위해선 일단 돈이 필요했다. 뭘 배우더라도 맨땅에 배울 순 없으니까. 그림도, 음악도, 운동도 취미다운 취미를 만들기 위해선 돈과 시간은 필수였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면 돈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겠지만, 나처럼 도서관에 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사야지 뭐, 별수 있나.

작년에 받은 카드 포인트, 십오 만점을 몽땅 전자책 사는데 써버리고도 매달 새로운 책을 사고 있으니, 맨손 체조나 조깅이 아니고서는 공짜로 취미를 만들긴 힘들다.



몇 년 전 김미경 님의 유튜브에서 취미가 취미로 끝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귀가 쫑긋해졌다. 취미로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때 나는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글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문장의 파도 속에서 과연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그물에 걸릴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마저 있던 자신감도 뚝 떨어져 먼지처럼 사라졌다. 꾸준함을 장착하고 되든 안 되든 일단 글을 생산하고, 팔리든 안 팔리든 진열대에 올려놓기를 몇 년째.

드디어 나도 취미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취미가 일이 된 순간 취미를 잃게 된다는 말을 듣고, 쓰기를 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이라던지 책 읽기 모임에 선뜻 들어가지 못했고, 만들지도 못했다.

생각은 정말 많이 했었다. 내 이름을 건 선량한 글쓰기 교실을 만들어 볼까? 시를 써서 나누는 모임은 어떨까? 하지만 항상 똑같은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에이, 하긴 뭘 해. 내 글이나 열심히 쓰자고!!


자신의 글을 뉴스레터로 만들어 발송하는 작가님들을 보며 매번 감탄한다. 글과 돈이 교환되는 순간, 그 부담감은 열 배, 아니 스무 배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부담감을 이겨낼 정도로 멘탈이 강한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자신의 글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생계가 어렵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세 작가님의 레터링 서비스를 구독해보았다. 가장 유명한 이슬아 작가님, 브런치에서 알게 된 모 작가님, 그리고 인스타에서 알게 된 어느 작가님.(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살 때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취향과 습관으로 지불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레터링 구독은 조금 다르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구독을 누르고 계좌 이체로 돈을 지불하기까지 꽤 고민의 시간을 갖는다. 그 사람의 글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글인지, 내가 지불한 만큼의 만족감을 줄 글인지 고심하게 된다.


반대로 중단은 매우 쉽다. 보험이나 신문을 중단하려면 일단 전화해 중단 사유를 설명하고, 그래도 이런저런 회유성 설명을 듣고,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재구독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얼굴 마주 볼 사이도 아니니까.

나는 그들의 용기가 부럽다. 간절함에서든, 자신감에서든, 그것도 아니면 성공을 위해서든. 큰 파도처럼 밀려드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글을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을 그들은 진짜 용자이다.



최근에 나도 그런 무모한 용기를 내보았다. 책 쓰기 강의를 시작한 것인데 그 전엔 없던 용기가 딱 하룻 동안 내 곁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하필 그때 강의 제안을 받고 말았다.

다음날엔 그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후회가 밀려왔다.

항상 하던 생각, 바로 ‘내 글이나 쓸걸. 내가 왜 그걸 한다고 했을까? 이 부담감을 어쩌지…’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 때, 내 글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내 글에선 보이지 않던 오문과 비문이 유독 잘 보인다. 그런 문장에 피드백을 하다 보면 내가 써 놓은 글이 떠오른다. 아, 나도 이렇게 썼었는데, 잘못된 문장이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취미가 일이 되면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돈이 되는 일을 만들기 위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 부담감을 이겨 내야만 내 글도, 나 자신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이제껏 내가 제자리에 머물렀던 이유는 부담감이 싫어서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었다. 부담감을 이겨내려면 그만큼 공부하고 연구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부담감을 이겨낼 때 취미는 일이 되고, 나는 프로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취미는 더 깊어지든지, 아니면 사라지든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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