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복권 파는 집

1. 복권 가게의 복희

by 선량

복권이가 나와 함께 살 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늘 아래 우연은 없다고 믿는 나지만, 우연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필연이 되려면 필연을 성립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던지, 알고 보니 같은 학교 출신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같은 동네 사람이라든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조차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아, 지금 언급하고 있는 건 복권이에 관한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복권이의 부계 쪽 주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복권이 할아버지라고 해야겠다.

할아버지라고 하니 그가 마치 나이가 많은 노인처럼 들리지만, 외모만 봐서는 30대 중반처럼 보였다. 정확한 나이를 물어본 건 아니라서 그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40대이면서 동안인 사람도 있고, 결혼했지만 동안인 사람도 있으니까. 풍성한 머리숱과 늘씬한 배는 열 살은 족히 어려 보이게 만든다. 반대로 빈약한 머리숱과 불룩 튀어나온 배는 열 살은 족히 늙어 보이기도….



사실 그 가게는 엄마가 소일 삼아 운영하던 작은 복권 가게였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편의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게 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안 그래도 작은 가게를 더 작게 줄였다. 그리고 “만남 슈퍼”라는 간판을 때고 “복권 팝니다”는 간판을 걸었다. 왜 복권 가게를 차리고 싶었는지 엄마에게 딱 한 번 물어보았었다. 엄마의 대답은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복권 당첨되면 좋으니까. 그게 누구든 말이야. 행복해 보이잖아. 그걸 보는 게 좋아서.”


좁은 가게 카운터에 앉아서 평생을 보낸 엄마의 세계는 딱 그만큼이었나 보다. 엄마는 그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한 걸은 내딛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하지만 더 두려워했던 건, 가게를 접고 집구석에 틀어 박히는 일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크기의 가게에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를 만들었다.


그 가게에서 복권만 파는 건 아니다. 작은 테이블 두 개와 플라스틱 의자 여섯 개가 놓여있고, 자판기 커피와 음료수도 판다. 동네 사람들이 가게를 지나가다 복권을 사면서 그 의자에 앉아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즉석 복권을 산 후, 그 자리에서 당첨 여부를 확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커피를 한 잔 씩 뽑아주거나, FM 라디오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하거나 분노한다.


그런 엄마가 언니의 산후조리를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가게를 잠시 나에게 맡겼다. 마침 나는 2년 계약직이 끝나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이력서를 다시 써서 경제 활동을 해야 했지만,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고 2년 동안 일했더니,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정규직 전환을 꼭 시켜 주겠다던 팀장님은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정규직 전환이 쉽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번이라도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몸과 마음을 다 주지도 않았을 텐데.


엄마는 금요일 저녁에 규칙적으로 복권을 사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가게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따라 조카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신생아가 있는 집에 복희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엄마의 복권 가게와 복희를 잠시 맡게 되었다.



복권이에 대해 말하려면 우리 복희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복희는 복권 가게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다. 처음엔 우리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었는데, 비쩍 마른 모습이 안쓰러워 고양이 밥을 몇 번 주었더니 매일 찾아왔다.

결국 복희는 복권 가게 안으로까지 들어왔고, 우리 식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친구가 되었고, 복권 가게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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