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내리사랑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난 김에 엄마에게 카카오톡 화상 전화를 했다. 그런데 받지 않는다. 전화를 해보니 전화기는 꺼져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다 핸드폰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상하게 아빠게에는 특별한 용건 없이 전화하는 게 영 어색하다. 마흔이 넘은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이러는 게 좀 이상하긴 하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묵은 감정이 남아있다거나, 아빠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색함”이 싫어서이다.
그건 아빠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먼저 전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뿐더러,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도 꼭 특별한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 입학 통지서가 나왔다던지, 남편 민방위 훈련 통지서가 나왔다던지, 국민연금 고지서가 날아왔다던지....
한국에 집이 없는 우리는 주소지를 고흥 친정집으로 옮겨 놓았다. 해외에 살아도 보험은 들어가고 있고, 통신비용과 의료보험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아빠가 처리해 준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해외 사는 딸과 손주들을 위해 작은 일을 처리해주면서 여전한 아빠의 존재감을 과시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적극적으로 일들을 처리해 주신다.
아침 준비를 하는데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런데 그냥 메시지가 아니라 음성 메시지였다.
‘뭘 잘 못 누르셨나? 아니면 무슨 일이 있으신가?’
음성 메시지 버튼을 누르니, 예상치 못한 아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혼자 깔깔대며 웃다, 울컥 목이 매였다.
아빠와 엄마를 못 만난 지 1년이 넘었다.
“선량아, 잘 지내니? 아빠는 잘 지낸다.
아이들은 학교 잘 다니니? 지금 면사무소에서 카카오톡 음성 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단다. 그래서 이렇게 보내봤다.
잘 지내거라.”
아빠의 목소리엔 어색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은 부모의 마음도 잔뜩 흘러나왔다.
아이들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라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자다 깬 아이는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딱 한 번만 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제야 아이는 입을 떼었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저는 잘 지내요. 코로나 조심하세요. 방학 때 갈게요.”
나는 내 목소리는 보내지 않고 딸아이의 목소리만 보내고 말았다. 그리움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방학 때 한국에 휴가를 가면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시골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노인들이 많은 동네라서 과연 받아줄지 모르겠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고민 끝에 아빠의 유자 농장에 있는 작은 방을 우리를 위해 준비하겠다 하신다. 2주 동안 먹고, 자고,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을 것 같다. 아빠는 그걸 하나하나 준비해 주실 모양이다.
그게 번거롭고 귀찮을까?
아니, 아마도 아빠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실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일흔일곱이 되어도, 딸이 마흔이 넘어도
아빠는 여전히 아빠고, 나는 여전히 딸이니까.
그게 부모와 자식이니까.
나는 그런 부모님을 뒤로하고
내 아이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싸고, 학교 가방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