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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8. 2021

방향을 알려준 꽃, 개양귀비

당신의 꽃

인도 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던 3월.

아이들의 봄방학을 맞아 가까운 리조트로 여행을 떠났다.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리조트였기에 여행이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캐리어 하나에 네 식구 짐을 넣고 컵라면과 과자를 잔뜩 들고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얼마만의 외출인가~



일부러 인도까지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뉴델리에 살아도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타지마할도, 자이푸르도, 남부 휴양지 고아나 캐랄라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콜카타와 갠지스 강도 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차만 타면 멀미를 했기 때문이었고, 장거리 여행을 힘들어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했다.



역시나 고르지 못한 시골길을 달리는 내내 아이들은 속이 좋지 않다며 드러누웠다. 차멀미는 도대체 언제쯤 없어지려나?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도착한 리조트는 별천지 같았다.

넓은 부지 곳곳엔 나무와 꽃이 잔뜩 있었고, 숙소는 2층 건물의 단독 숙소였다. 한쪽엔 작은 동물원과 놀이터, 수영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휴가를 만끽했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도, 정오의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도, 나무 사이로 선선히 불어오는 한줄기의 바람도.

시끄럽게 꽉꽉 거리며 무리 지어 걸어 다니는 뿔닭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멋진 모습을 뽐내던 공작새도 모두 좋았다.


딱 한 가지,

길치인 내가 힘들었던 것은 리조트가 너무 넓어 방향을 잘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산책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매번 헷갈렸다.  

이번엔 기필코 잘 기억해야겠다 다짐하고 홀로 길을 나섰다.

좁은 오솔길을 지나니 네 방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그 한가운데 화단엔 여러 꽃이 피어있었다. 그중 한 꽃에 눈길이 머물렀다.


"와, 예쁘다... 이런 꽃은 처음 보내."

꽃잎은 진하게 붉었지만 한복 치마처럼 얇았다. 세네 겹의 꽃잎이 감싸고 있는 수술은 보랏빛이었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망울엔 하얀 솜털이 나 있었고, 만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아침 바람에 날려 흔들거리는 꽃은 제발 나 좀 봐달라며 유혹하는 것 같았다. 꽃의 유혹에 응답이라도 하듯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춤을 추었다. 도대체 저 꽃의 이름은 뭘까?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아, 양귀비라는 꽃이구나~'


처음엔 마약의 주성분이 되는 양귀비 꽃인  알고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마약 성분이 없는 관상용 개양귀비 꽃이라고 한다.


이름 앞에 "개"가 붙었지만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 양귀비에 지지 않는 것 같다.


이 꽃 덕분에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개양귀비 꽃을 앞에 두고 눈을 들면 식당이 보였고, 뒤돌아 서면 숙소로 가는 길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산책로와 놀이터가 있었다.

방향을 알려준 개양귀비 꽃 덕분에 내가 가야 할 곳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연락이 없던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온다. 잘 지내느냐, 인도는 어떠냐, 가족들은 건강하냐, 한국엔 언제 오느냐...


잘 지낸다, 우리는 괜찮다, 집에만 있다, 하지만 언제 갈지는 모르겠다....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웅크리고 지내다가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 할까?


자극적인 뉴스에 괜히 화가 났다가, 이런 상황이 되기까지 손 놓고 있던 인도 정부에 분노가 일었다가, 그래도 우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위안을 했다.

한국 전세기 소식을 듣고 검색했다가 조용히 창을 닫았다.

참고 있던 온갖 부정적 감정이 화르르 일어나 나를 잠식시켰다. 울컥울컥 올라오던 울음을 이번엔 참지 않고 토해냈다.


옆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친구도 아직 잘 지낸다고 했다.

“우리 함께 코로나 존버 해요.”

그녀의 이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존버 하기로 결심했다.

이쪽일까 저쪽일까 방황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묵묵히 내 일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인도의 코로나가 사라질 때까지 존버 하겠다.




개양귀비 @goodness


개양귀비 꽃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위안이라는 꽃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오늘 개양귀비 꽃을 그리며

흔들렸던 마음을 잠잠히 붙잡고

삶의 위안을 얻는다.


개양귀비 @goo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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