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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09. 2021

100년 전의 문장이 나를 깨우는 시간

빠른 세상 속에서 천천히 읽고 씁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거나, 글쓰기 강좌를 듣지 못했다.

하다못해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구할 사람도 없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며 필사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지 헤아리고 문장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비록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필사 노트가 쌓여갈 때마다 차곡차곡 내 문장을 저축해 놓은 기분이었다. 때가 되면 저장해 놓은 문장보다 더 많은 문장이 복리 이자로 따라올 것 같은 기분이랄까.

지금 당장은 쓰지 못하더라도, 필사 노트를 가지고 있다면 언젠간 쓰게 될 거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책을 읽고 삶에 적용해보기 위함이 가장  것이다. 미라클 모닝 책을 아무리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한 것처럼.


책을 삶에 적용해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을 써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에 책의 문장을 삽입하거나, 책의 문장을 가지고 와서 내 삶에 비유하며 쓸 때, 비로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이나 공감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고 내 삶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그걸   직접 적용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슬로우 리딩을 함께  멤버를 집했고, 9명의 멤버와 함께 하게 되었다. 




슬로우 리딩을 시작했던 5월 중순.

내가 살고 있는 인도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날마다 코로나 사망자 소식과 산소가 부족해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 의료 붕괴 뉴스가 나왔다.


이 상황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고, sns를 통해서도 괜찮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무서웠고 불안했다. 온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날이 다시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모든 정신은 슬로우 리딩 클럽에 쏠려 있었다. 멤버들의 슬로우 리딩을 리드하고 피드백해야 했다. 무엇보다 슬로우 리딩 클럽장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했다.

슬로우 리딩에 집중하는 동안 인도의 상황을 잊고 살았다. 그게  미안해 자꾸만 멈칫했다. 

고민 끝에, 슬로우 리딩 멤버들의 가입비를 인도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로컬 학교에 여분의 병상과 산소 발생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에 바로 후원을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무슨 특별한 목표가 있느냐고.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돈을 벌기 위함이냐고.

글쎄....


특별한 목표나 이루고자 하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가 글을 시작할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즐거운 글쓰기를   있기를 바랐다.  길에 함께 동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슬로우 리딩 첫 번째 책으로 선택했던 헤르만 헤세의  “어쩌면 괜찮은 나이 읽으며 나는 정말 괜찮아지고 말았다.




나의 열매는 어디에 있는가?
 사랑을 꽃피웠지만  열매는 고통이었다
 믿음을 일궜지만  열매는 증오였다
나의 앙상한 마른 가지에 람이 휘몰아친다
 그것을 조롱하며 폭풍우를 이겨낸다.

열매란 내게 무엇인가?
내게 목표는 무엇인가?
 꽃을 피워냈고 
피워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이제 나는 시들어 가고,
시들어가는 것은 나의 목표일 ,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슴속에 파묻어둔 목표는 순간적일 .

옳은 길이든 그른 길이든,
꽃을 피웠든 열매를 맺었든,
모두  하나일 ,
다만  이름에 불과하다.

-늦가을 속에서,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100 전에 헤르만 헤세가  글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꽃이나 열매, 과정이나 목표.  모든 것은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길이든  길이든 모두  각자의 삶이고 인생이다. 

목표가 없다고 해서 행위까지도 없는 것은 아니니, 


행위를 뒷받침할 목적어는 떠오르지 않지만, 

이게 삶이고 인생이 아닐까.... 



전에는 그토록 당연해 보이던 인생이 이제는 너무나 소중한 것, 고갈된 위험에 처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당연하게 소유했던 것이 불분명한 불변의 것을 빌려온 것으로 변해버렸다. 

-높이 추켜올린 손가락,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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