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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18. 2022

오지랖과 관심 사이

마음이 가는 곳을 무시할 수 없어서.


서점이 가까이에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전자책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에서 나는 꿈꿈한 나무 향기와  텁텁한 활자 냄새를 좋아한다. 소리가 꺼진 새벽, 오로지 들리는 차락 차락 넘어가는 종이 소리와 책에 집중하면 드리는 나의 거친 숨소리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속도보다 과정을 즐기는 편이라서 좋은 문장 앞에선 한참을 서성이다 빙 돌아간다.

노트에 문장을 옮겨 적으며 기필코 내 문장으로 만들리라! 다짐하다 보면 달팽이가 책 한 페이지를 빙 돌아 제 갈 길을 가는 것만큼이나 굼뜨다.

‘슬로우리딩’이라는 꽤나 있어 보이는 독서를 하고 있다. 이게 영어로 쓰니까 있어 보이는 것이지, 한글로 쓰면 “느리게 독서”정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 ‘느리게 독서’는 좀 많이 게을러 보인다.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여러 권 있으면서도 좋은 책을 만나면 또 사서 읽는다. 그래서 먼저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책이 있고,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끝난 책이 있다. 몇 년 전에 시작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월든 같은 책도 당연히 있다.

내 독서습관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토끼와 거북이 정도 일려나.


알라딘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 “알라딘 추천 에세이”코너에 섰다. 이미 서점 입구엔 “베스트셀러”책들이 뽐내며 누워있는데 추천 도서라니….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는 내 가련한 책을 떠올리며, 깍두기를 떠올렸다.

‘괜찮아, 깍두기라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돼….’

라고 위로했지만, 순간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가 떠올랐다. 아…. 주인공만 빼고 다 죽어야 하는 운명이란…. 베세트셀러만 빼곤 다 사라져야 하는 책의 운명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니?


책과 대화하는 내가 좀 웃겨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평일 낮 11시엔 사람이 거의 없다.

‘알라딘 추천 에세이’ 코너에서 낯선 책을 하나 발견했다.

오늘의 ‘쁘띠 행복’을 위해,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지음.


쁘띠 행복이라니….

왜 하필 쁘띠를 쓴 것일까….

소확행이라는 단어도 있고, 작은 행복 또는 소소한 행복이라고 해도 될 텐데. 왜 하필 프랑스어의 ‘작다’를 의미하는 ‘쁘띠’를 붙였을까….

이건 마치 ‘작은 happiness’처럼 작위적이지 않나?


이런 것이 궁금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또 있는진 모르겠지만 난 그랬다. 왜 쁘띠 행복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고 펼친 책이…. 재밌다….

아~ 이렇게 한 방 먹는구나!  괜히 “추천 에세이”가 아니었구나.

궁금했던 “쁘띠”의 이유를 찾으려는 열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이 책의 문장과 에피소드에 빨려 들어갔고, 급기야 임진아 작가님의 인스타그램까지 들어가 팔로우를 눌렀다.

이분, 이미 유명한 작가님이셨나 보다. 나만 몰랐나 보다. 괜히 추천 에세이가 아닌 것이었다.


책을 사서 가로수길 숙소로 돌아왔다. 책을 읽다 보니 그가 떠올랐다.


“작가님, 다음 주에 만날 수 있으면 만나요. 제가 거기로 갈게요. 코로나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만나요.”


한국에 오면 만나자는 사람은 많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진짜 만나게 되는 사람은 드물다.

온라인 만남을 오프라인으로까지 끌어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둘 중 한 사람이 시간과 공간, 마음의 중력까지 물리쳐야 만남이 성사된다.


과연 그를 만날 수 있을까?

확실치 않지만, 왠지 이 책과 그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책을 다 읽고 선물로 줄까? 그러려면 책을 깨끗이 읽어야 하는데….’


책을 깨끗이 읽을 자신이 없다. 달팽이가 책 한 페이지를 빙 도는 동안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다음 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알라딘 추천 에세이”코너로 곧장 달려가 그 책을 손에 들었다. 계산대 앞에 진열된 카드 중에 “작은 아씨들” 카드를 하나 골랐다. 그것들을 계산대에 올려두고 잠시 기다렸다.

“어제 같은 책을 사셨는데, 또 사시는 거 맞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보처럼, “아…네….” 하고 대답했다.

카드를 봤다면 선물용이라는 걸 알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오지랖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 그런데 같은 책을 또 사느냐고 묻는 것도 오지랖 아닐까?


책과 카드를 가방에 넣고 돌아오는 길, 이건 내 오지랖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는 남편의 주둥이가 떠올랐기 때문.

혹시나 해서 가장 깊숙이 책을 집어넣었다. 같은 책이 두 권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건 오지랖이 아니라 관심이라고, 책에 대한 관심만큼 누군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카드에 안부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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