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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30. 2022

마음과 마음 사이

우리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출국일이 다가오니,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항상 이런 식이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엔 모~두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한국에 있으면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고, 본업이 있고, 코로나가 있기 때문이다. 사촌 언니를 만나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려고 했었던 딸아이조차도 코로나 때문에 얼굴도 못 보고 가야 할 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와 우리가 좀 많이 슬프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PCR 음성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 우리는 더욱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조심스럽다. 만나기는 하되 밥은 먹지 않고 차만 마신다거나, 만나기는 하되 마스크는 내리지 않고 대화만 한다거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을 읽고, 커다란 냄비에 끓고 있는 찌개를 함께 떠먹으며, 술잔을 부딪히며 만나야만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쉽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 기나긴 대화를 하고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인다.

 


"작가님, 제가 사정이 생겨서 길게 만날 수 없게 되었어요. 어쩌죠... 꼭 만나고 싶었는데... 꼭 전해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잠시만, 시간 내주실 수 있어요?"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를 쓰신 이연 작가님을 알게 된 곳은 바로 여기, 브런치다.

아니, 인스타그램이 먼저였던가? 블로그였던가?

어디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님과 아는 척하며 지낸 지 꽤 되었다.


암처럼, 삶에 커다란 굴곡을 경험했거나 죽음처럼,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얼마나 고민하며 한 문장을 쓰셨을지, 그 진심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연 작가님의 글은 삶을 허투루 살고 싶은 내 마음을 토닥여준다. 삶 앞에서 고통의 척도를 비교하면 안 되지만,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느끼는 힘겨움은 별거 아닌 거라고 간주하게 한다. 그런 비교가 가끔 죄송하다. 하지만 작가님은 매번 나에게 "오늘도 좋은 날이에요"라고 손짓한다. 우리에게 좋은 날이란 이렇게 숨을 쉬고, 햇빛을 느끼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을 쓸어 올리고, 천천히 봄이 오는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가르쳐준다.



"작가님, 도착했어요. 저 편의점 앞이에요."

아무 준비도 못하고 추리닝에 코트를 걸치고 뛰어 나갔다. 편의점 앞에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모자를 쓴 한 사람이 서 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님을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작가님~~~"

우리는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작가님...." 그 말 한마디엔 내가 하고 싶은 말 수 십 개가 담겨 있었다. 그건 작가님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보자마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왜 눈물이 났는지 나도 그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서로 꼭 포옹을 해주고, 손을 꼭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울고 웃기만 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도 보지 못했고, 많은 말도 못 했고, 차 한잔도 못했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진심이 전해졌다. 그건 바로 서로가 있는 자리에서 건강하기를, 안전하기를,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우리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마음과 마음 사이의 여백에 적어두고,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작가님이 주고 가신 책을 펼쳤다. 이 책을 보며 날 생각했다는 작가님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한참을 웃었다.

책을 읽다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 안에는 분명, 여백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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