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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4. 2022

1. 내 가정의 경제학 vs 소로의 경제학 (1)

나만의 월든을 찾아서

"잠깐만 이야기 좀 해."

"왜?"

"지난여름에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 말이야. 돈을 얼마나 썼지? 카드값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온 거 같아. 자기 카드 얼마나 썼는지 확인 좀 해봐."


그의 말에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이미 몇 달이 지나 연말정산을 할 시기인데 여름에 쓴 돈을 확인해달라니...

"그걸 어떻게 기억해? 그리고 부산 숙소에서 살면서 돈을 많이 쓰긴 했지."

"근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그래. 확인 좀 해 볼래?"

"확인을 하긴 뭘 해. 그냥 많이 썼다니까? 숙소에서 밥을 할 수도 없어서 맨날 시켜 먹었지. 애들이랑 온종일 지내면서 밖에 나가 간식 사 먹었지. 병원 다녔지. 박물관이랑 아쿠아리움 돌아다녔지. 밀라노 온다고 옷 샀지.... 다~ 필요한 데 쓴 건데. 뭘 또 확인을 하래."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나도 많이 쓴 건 아는데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서 그렇다니까. 내가 번 것 보다 더 썼잖아~"

"아 몰라~ 인도에서 안 쓴 돈, 한국에서 좀 쓰면 안 돼? 뭘 그렇게 돈돈돈 하고 난리야. 내가 맨날 많이 쓰는 것도 아니고. 잠깐 한국에 있을 때 쓴 거 가지고 진짜 이럴래?"

"또 화낸다.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어디에 썼는지 확인 좀 해보고 계획적으로 쓰자는 말이잖아."

"몰라~ 네가 해~"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우리는 꼭 돈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싸움으로 끝난다.


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혼자 힘들게 회사 생활을 해서 받은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댁이나 친정이 특별히 잘 사는 것도 아니어서 물려받은 재산도 없다. 10년 동안 해외생활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줄로 생각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한국의 물가는 임금인상률보다 더 빠르고 더 높다. 오히려 한국과 해외를 오가느라 지출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

"10년 동안 힘들게 해외생활했는데 왜 모아놓은 게 없냐...."

그가 씁쓸하게 이 말을 하면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다. 집안 살림만 하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자격지심이기도 하다.

"없긴 뭐가 없어. 애들 잘 컸고, 학교 잘 다니고. 이만하면 모아놓은 게 많은 거지.... 꼭 통장에 돈만 보냐...."

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정말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위주로 소비하며 살고, 열심히 모았지만, 집을 사기는커녕 전셋값도 되지 않는다. 남들처럼 대출받아서 집을 하나 사 두고 나갔어야 했나.... 후회한들 이미 많이 늦었다.


작년 여름에 인도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은 밀라노에 있다. 집 없이 산지 10개월 차가 되었다. 이제 곧 1년이 되어간다. 지금도 여전히 머물 집을 구하지 못해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아주 좁은 주방과 내 허리까지 오는 미니 냉장고, 숙소 1층에 있는 공용 세탁기를 이용해 먹고살고 입는다.

좁은 거실에 테이블용 식탁이 딱 하나 있다. 거기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을 하거나 아이들이 숙제를 하다가 밥때가 되면 얼른 치우고 밥과 반찬과 국가 숟가락을 올린다. 밥을 다 먹으면 또 얼른 치우고 다시 노트북과 책을 올려놓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온대성 기후에서는 인간 생활의 필수품은 식량, 주거공간, 의복, 연료의 항목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다. 이것들을 확보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자유와 성공의 가망을 가지고 인생의 진정한 문제들을 다룰 준비가 되는 것이다."

[월든, 23p,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강승영 옮김, 이레 출판사]


식량, 주거공간, 의복, 연료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문제들을 다룰 준비가 덜 된 것 일까?

안정되지 않은 가정 사정 때문에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내고 있다. 남들에겐 진정한 여행자, 노마드 인생쯤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우리의 삶을 부러워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시라~ 멘탈이 많이 흔들립니다.....


"이제부터 딱 필요한 생활비만 송금하고 나머지는 내가 가지고 있을게."

"그래? 알았어.   돈으로 투자도 하고, 주식도 하고  .  . 얼마나  굴리나 한번 보자."


그동안 그는 필요한 용돈만 남기고 모두 나에게 월급을 송금했다. 적금, 주택청약, 보험비 등이 모두  통장에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돈이 나가고 남은 돈은 차곡차곡 모아서 적금을 했다. 그래 봤자 이자는 얼마  되지만.... 그래도 나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이것밖에 없냐고 그가 한탄을 하면 이상하게 내가 뭔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명품 가방 하나 없고, 화장품도 제대로 없는데... 뭔가 많이 억울하다.


지금까지 힘들게 일했음에도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하고, 집을 사지 못한 게 모두 나 때문인 것 같기만 하다. 아니, 정부의 잘못된 주택정책 때문일지도....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반수도 안 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특히 문명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자기 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월든, 47p, 헨리 데이비드 소로]


"노동자가 자기의 오두막을 마련하려면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가 집을 마련하는 대신 세를 사는 것을 선택하더라도 상황이 더 나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월든, 48p]



1845년에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 소로가 쓴 문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매사추세츠의 콩코드 지역에서 일어난 주택문제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너무 같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 소유의 오두막을 지으려면 지금은 생의 반이 아니라 전 생애를 바쳐야 한다는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주택문제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가 보다. 그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생기는 문제 중의 하나일까? 그러고 보니 집값 문제는 여기, 이탈리아에도 있다.... 월세가 너무 올라서 집을 구하기가 힘들다....



소로는  숲으로 들어가 혼자서 오두막을 짓고, 밭을 일구어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하며 먹고 산다. 그리고 최소한 일하고도 먹고살  있다는  몸소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비싼 양탄자나 호화가구가 없더라도 자연과 함께 충분히 풍요롭게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자녀가 없을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두 아이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세끼 밥만 먹어서는 안 된다. 아이스크림, 과자. 라면, 치킨, 피자.... 어쩌면 이렇게도 충실하게 인간 본성을 따르는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학교를 다녀야 하고, 학원에 다녀야 하고, 교우관계를 맺기 위해선 취미 생활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모두 사치가 아니라 기본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지 말라."라고 충고하는 소로에게 발끈하고 말았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라고 따져 물으며 월든의 첫 챕터를 덮었다.



"너무 부자와 노인을 까 대는 문장에 마음이 불편했어요."

"저도요. 첫 챕터 읽기 좀 짜증 났어요. 왜 이렇게 잘난 척하는 거죠?"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 시대 상황과 지금이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부양가족이 없어서 그래요. 이제 겨우 서른이 된 청년이 뭘 알겠어요?"


월든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쉬지 않고 톡이 날아왔다. 우리가 느낀 감상은 대부분 비슷했다. 한마디로 너무 잘난 척하는 소로가 좀 불편했다는 것이었다.


"우리, 소로를 까더라도 월든을 끝까지 읽어보고 시원하게 깝시다!!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뭐가 있을까요?"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다시 방향을 잡았다. 이제 출발했는데 벌써 지쳐버리면 안 된다.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장소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월급을 받았다며 돈을 송금했다. 필요한 생활비만 송금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한다더니, 이상하게 많이 송금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이 보냈어? 자기가 관리한다며?"

"아휴, 바빠서 뭘 할 수가 없어. 그냥 자기가 해."

"뭐야~ 투자도 하고, 주식도 하고 하셔야지~"

"몰라. 그냥 자기가 관리해."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다!!!!"


결국 다시, 경제권을 넘겨받았다. 이러면 또 눈치 보며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인생 한방인데, 한방에 확 넣어버려? 아니면 나도 부동산을 알아봐? 아니면 안전하게 가지고 있어?

숲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땅을 경작하며   없는 우리는 오늘도 돈을 굴릴 방법을 이리저리 떠올리며 눈알만 열심히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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