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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5. 2022

2. 내 가정의 경제학 vs 소로의 경제학 (2)

나만의 월든을 찾아서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이로 보내는 사람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월든, 74p, 헨리 데이비드 소로/강승영 역, 이레]




딱 10년 전, 남편이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결혼 전부터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해외에서 일하기 위해 날마다 영어 공부를 하고, 해외 영업 파트로만 이력서를 돌렸다. 터키로 가야겠다며 주말마다 터키에서 온 청년과 일대일로 터키어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며 눈을 흘기곤 했다. 나는 해외에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정말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큰아이가 이제 막 100일 되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결정이었을까?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단지 그가 가자고 하니, 따라나선 것이었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가 "해외에서 오래 살았으니, 돈 좀 많이 모았느냐?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하긴, 친정 아버지 시대엔  해외에 나가 몇 년만 죽어라 고생하면 목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모아 한국에 와서 작은 가게를 차리던지, 집을 살 수도 있었다나....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아빠, 해외 살아도 돈 나가는 건 똑같아요. 애들 학교 보내야지, 먹고살아야지. 아파트 한채 값이 얼만 줄 아세요? 큰언니도 20년 넘게 일해서 이제 겨우 아파트 샀는데, 그것도 빚이 절반인데 우리가 무슨 수로 집을 사요."

정색하며 대답하는 내 말에 친정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값이 몇억씩 하는 시대인지라 일억은 껌값처럼 느껴지는데. 어디 일억 모으기가 쉬운 일이던가?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거의 10년이 걸리는데...


조금만 고생하면 돈을 벌 수 있었던 소로의 시대가 오히려 좋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도로 건너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와 시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또한 너무 멋진 삶이지 않을까?



"이제 그만 한국에 정착해서 남들처럼 살라."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남들처럼 사는 게 도대체 뭐냐고 되묻고 싶어 진다. 하지만 부모의 심정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에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의 삶이 있고, 우리의 삶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그리고 되묻고 싶어 진다. 아빠는 아빠의 삶에 후회가 없느냐고. 남들처럼 살면 정말 행복하느냐고.




" 세상에   있는  많은 제각기 다른 인간들이 존재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길을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월든, 102p, 헨리 데이비드 소로/강승영 , 이레]



가족의 기업을 이어 연필 공장에서 일하지도 않고, 하버드를 졸업하고서도 교사의 길을 계속 가지 않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남들이 가라고 하는 길을 가지 말고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가라"라고 당부한다. 그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옳은 길이라고 토닥인다.


돈을 벌려고 해외로 떠난 우리를 꾸짖을 땐 언제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우리를 다시 다독이는 소로 씨는 츤데레인가?


"항해하는 사람이나  도망치는 노예가 항상 북극성을 지켜보듯이 우리는 어떤 수학적인 점에 의해서만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점은 평생 동안 우리의 길을 가리켜주기에 충분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정한 시일 안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진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월든, 102p, 헨리 데이비드 소로/강승영 역,이레]


우리가 지향하는 북극성, 우리의 점, 우리의 지표는 무엇일까?


나 역시 처음엔 남편만 믿고 따라나선 해외생활이었다. 그래서 원망을 참 많이 했다. 너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한다고, 너 때문에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모두 너 때문이라고 온 몸으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 수 있었다. 덕분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가 바라본 북극성과 내가 바라본 북극성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향하는 항해의 길은 같다. 일정한 시일 안에 항구에 도착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항로를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북극성이 있다. 누구는 돈을 좇아갈 것이고, 누구는 명예를 좇아 갈 것이다. 또는 사랑이나 행복의 북극성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 북극성이 무엇인지에 따라 삶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이런 삶이 있고, 저런 삶이 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는 방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 좋아 보일지라도 그게 또 완전한 행복도 아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라고 말한 소로 씨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 내가 바라보며 따라가는 북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글인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인도해 준다. 가끔 다른 길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나를 안전한 항로로 돌아가게 만든다. 과거에 내가 쓴 글은 나의 미래가 되어 지금의 나를 이끌어 준다. 그 항구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항해하는 이 길이 즐겁다는 것이다.




함께 월든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는 우리는, 지금 같은 곳을 항해하고 있다.  모두 걷는 속도가 달라서 일정한 시일 안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항로를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느린 사람을 위해 기다릴 줄 알고, 한 발 앞서 가며 길을 내어주는 사람도 있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더듬거리며 앞사람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다.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걷는 이 길이 참 즐겁다.


지금 우리는 월든 호수를 향해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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