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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30. 2022

3. 소로의 하루 vs 나의 하루

나만의 월든을 찾아서

집을 구하고 있다. 밀라노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집은 많지만, 내 집은 없다는 게 한국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


최근에 월세가 굉장히 많이 올랐다고 한다.

밀라노 시내 월세값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월 300만 원 하는 집이 겨우 방 두 개라니... 방 세 개짜리 집을 구하려면 월 500은 줘야 한다나....

어떻게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범위 내에서 집을 구해야 한다. 그것도 학교에 걸어갈 수 있고, 해가 잘 들고, 주위에 공원이 좀 있고, 장 볼 수 있는 마트도 있으며 지하철 역도 멀지 않은 그런 곳. (과연 있을까?)

그렇다 보니 숙소 생활을 한 달째 하고 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거의 10개월 동안 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 샘이다.


얼마 전에 딱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학교까지 20분 정도 걸리고,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집이었다. 방은 두 개지만, 부엌으로 통하는 테라스가 넓게 있어서 꽤 마음에 들었다. 집값 예산 범위에도 딱 맞는 집이었다. 방문 예약을 해두었는데, 우리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인지, 예약 날짜가 저 뒤로 밀려 버렸다.

내 집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내가 어디에 앉든지 나는 그곳에 살게 될 가능성이 있었고, 따라서 경치는 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집'이란 '세데스' 즉,
‘앉은자리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월든, 117p,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이레, 강승영 옮김]



세데스(sedes)란 걸상, 의자, 벤치, 자리 또는 좌석을 말한다. 소로가 말한 집은 어디든 내가 앉은자리라는 샘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지내고 있는 투룸 같은 원룸 역시 우리의 집인 이다. 이곳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보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매일 밤 잠을 자니까.

하지만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집은 구하고 있어요?"

내 집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 같았으면 집 없는 생활에 스트레스받아 자주 우울해졌거나 안달복달했을 텐데 요즘은 마음의 동요가 덜하다. 이 마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낙관론적 마음도 아니고, '인연은 돌고 돌아 결국 만나게 된다'는 불교적인 마음도 아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때가 되면 적당한 집을 얻게 될 거라는 유물론적 사고가 더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밀라노 행을 결정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10년 동안 해외생활을 한 경험 때문이라고 나 할까.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지만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것은 또한 아니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다르듯, 그 두 나라와 이탈리아는 또 너무 많이 달라서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경험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꼰대의 말로 들리는 이치와 비슷한 게 아닐까...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로의 문장은 지금, 밀라노에 살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 같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월든 숲으로 들어간 것일까?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월든, 129~130p,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이레, 강승영 옮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본다는 건 도대체 뭘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 아닌가? 들숨과 날숨을 쉬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잠을 자기만 해도 살아진다.

하지만 소로는 의도적으로 삶을 산다고 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맞추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시간과 공간을 선택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직접 숲으로 들어가 직접 집을 지어 의도적인 공간을 만든다.  또한 의도적으로 새벽에 일어남으로써 자신의 시간을 만든다.


모든 사람에게 새벽의 선물이 주어진다. 소로는 "어떤 기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가장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 새벽을 한없이 기대하라."라고 말한다.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살지 말고, 소중한 시간을 음미하고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그 새벽을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나는 미라클 모닝을 믿지 않았다. 새벽 4시의 기적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맞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성공이라는 게 “돈" 또는 "명예"와 연결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벽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나에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후 내내 피곤해서 짜증만 늘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물론 돈과 명예도 더더욱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런데 월든을 읽으며 새벽 기상을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새벽에 일어나야 미라클이 일어나고, 성공을 한다는 말 보다도 “새벽은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월든을 읽고 필사하고, 단상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면 새벽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낮에 그걸 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으므로.

월든을 읽는 동안 소로의 삶이 조금씩 스며드는 걸 느낀다. 그건 오직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밀라노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밀라노가 아침이면 한국은 이미 점심때이다. 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확인해 보면, 이미 여러  멤버들의 슬로 리딩 인증이 올라와있다. 다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필사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결단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슬로리딩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조금 내어 해 달라는 말만 했는데, 그 의도적인 시간이 결국 새벽이었던 모양이다.

"새벽 슬로 리딩 모임인가요~"

우스개 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조금씩 변하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했다.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그리하여 호두 껍질이나 모기 날개 따위가 선로 위에 떨어진다고 해서 그때마다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든 또는 거르든 차분하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손님이 오든 또는 가든, 종이 울리든, 아이들이 울든, 단호하게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왜 우리가 무너져 내려 물결에 떠내려가야 하는가? 정오의 얕은 모래톱에 자리 잡은 점심이라는 이름의 저 무서운 격류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자. 이 위험을 이겨내면 당신은 안전한 데로 들어서게 된다.

[월든, 140p,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이레, 강승영 옮김]


위의 문장을 계속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어 슬로리딩 단톡방에 올렸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곧바로 멤버들의 톡이 날아왔다.

"호두 껍질이나 모기 날개 같은 하찮은 것에 신경을 빼앗겨 기차가 선로 위에서 탈선하지 말라는 말 아닐까요?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 같아요."

"작은 일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루를 평온하게 살아보라는 말 아닐까요? 점심때가 지나면 졸리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니까요. 그게 소용돌이가 아닐까요.."


멤버들의 생각을 들은 후에야 난 이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 읽었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슬로리딩을 하는 멤버들 덕분에, 다양한 생각을 전해주는 멤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월든으로 갈 수 있었다. 역시 혼자선 힘들지만 함께라면 가능한 일이다.





나는 오늘도 의도적으로 하루를 보내려 새벽 다섯 시에 알람을 맞춰 두었다.

드디어 알람이 울렸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 다시 누웠다.

6시 30분에 알람이 또 울렸다. 이젠 일어냐 한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새벽이 이미 지나버렸다.

책을 조금 읽다 말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달았다. 내친김에 내 사진도 올렸다.

이미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밥을 해야 한다. 분주하게 아침을 먹고나니, 이미 오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안일을 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점심때이다.

이런!!!!

오늘도 나에게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시간에 나를 맞추었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을 저버리지 못했다. 호두 껍질과 모기 날개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부화뇌동했다. 정오가 지나면 무서운 격루와 소용돌이 속에 내 몸을 맡기게 될 것이다.


괜찮다. 내일이면 다시 새벽의 선물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다시 하루를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알람 소리에 깨서 벌떡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곤 다시 생각할 것이다. 일어날까? 말까?

뭐시 중한디~

내일이면 다시 새벽이 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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