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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08. 2019

[12년전, 네팔#2] 네팔 사람들과 함께

내 친구 수니따


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벅터풀 국립병원에서 활동을 했다. 벅터풀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를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지역이다.

그 병원은 말이 국립병원이지 완전 작고, 깨끗하지 않은 곳이었다. 근처의 서민들을 위한 병원이라고나 할까.......

그 병원에는 오랫동안 일하고 계신 내과 박사님이 한분 계셨다.


한국에서 개원까지 하시며 의사로 일 하시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선교의 마음으로 코이카 파견 의사가 되어 네팔에서 거의 20년을 사셨다.



난 내과 병동에서 일을 하면서, 매 주 수요일마다 박사님께서 내시경을 하실때 옆에서 어시스트를 했다.
수면 내시경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일반 내시경으로 해야했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박사님께서는 날 참 많이 예뻐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셨다. 사모님 역시 자주 불러서 맛있는 집밥을 해주시곤 했다.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수니따이다. 병원 수납계에서 일하던 친구인데 사연이 많은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의과대학을 다니던 총망한 받는 청년이었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수니따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고, 남자의 집안은 부유하고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 엄청난 반대에도 둘은 몰래 연애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은 “포카라”로 여행을 떠났고 수니따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마취과 의사가 된 남자는 수니따를 데리고 어느 지방 병원으로 갔다. 남자의 집에서는 끝까지 수니따와 아기를 받아주지 않았고, 남자도 집안과 인연을 끊고 살게되었다.

그렇게 둘은 아들을 낳고 살았다.
어느날 이 남자는 혼자 부모님을 만나고 왔다.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다음날, 그 남자는 스스로 자기 손에 어느 주사를 놓고 말았다.
결국 그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로 수니따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벅터풀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와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다.


어느 가을날, 수니따의 집에서 하루 지내게 된 날 밤, 수니따는 자기의 아픈 상처를 하나 하나 꺼내 놓았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힘들면 말을 했어야지. 혼자 죽어버리면 다야? 나랑 아이는 생각도 안하는

나쁜 사람이야.”

수니따는 울분을 토하며 꾹꾹 담아 놓았던 묵은 상처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일 뿐이었다.

병원에서는 수니따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했다. 주로 좋지 않은 말들, 좋지 않은 시선들이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곤 했다. 간호사인 내가 원무과 직원인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 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딜가나 사람의 입이란, 참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수니따의 가족들은 정말 따뜻했다. 특히 수니따의 부모님은 딸의 아픔을 잘 감싸주었던 것 같다.


12년 전 7살 이었던 수니따의 하나뿐인 아들 수데스는, 지금 어른이 되어 엄마 옆을 지켜주고 있다.



그동안 여러번 다른 남자들로 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는데 그럴때마다 그녀는 남자들과 관계를 끊었다고 했다. 자기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수데스 하나만 잘 키우겠다고........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살았을지, 나로서는 상상할수 조차 없다. 아픈 상처를 딧고 아들을 잘 키워낸 수니따가 너무 멋지다.




네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여기 저기 친구집들을 방문하고 다녔다.현지인들과 소통하는것이 가끔 힘들기도 했지만, 그들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마흔이 된 지금은 이렇게 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지금은 너무 겁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기도 한다. 현지인들이 다가오면 나한테 바라는것이 있나? 먼저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인도에 와서 힌디를 배워보려 했지만, 머릿속에 가득찬 네팔어와 뱅골어 때문인지,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서 그런건지, 아니면 나도 이제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버린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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