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열이 나는 와중에 마늘을 까는 아이를 보며

by 선량

지금 밀라노는 감기와 전쟁 중입니다.

코로나 증상과 비슷하지만 코로나는 아닌 것이, 걸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코로나보다 더 아프다고 합니다.


현지 친구의 말에 의하면 Adeno virus라고 해요.

아데노바이러스는 1953년 아데노이드 조직에서 처음 발견이 됐다. 아데노바이러스는 호흡기 감염, 분변-구강 경로(fecal-oral route) 등 다양한 경로로 전파되며, 저농도의 염소에 대하여 저항성이 있으므로, 수영장의 물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사람 아데노바이러스는 주로 소아에게 감염되며, 드물게 성인에게도 감염된다. 아데노바이러스는 호흡기 질환, 결막염, 위장관염을 일으킬 수 있다.
출처 : 나무위키


가족들이 돌아가며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혼자 살아남았던 둘째 아이가 이번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열이 오르더니, 약을 먹어도 쉬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반에서 이미 6명 정도가 감기로 결석을 한 상태였고, 그중에 한 명은 매일 붙어 다니던 절친이었지요.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고 며칠 집에서 푸욱 쉬기로 했어요.

한국처럼 바로 소아과로 달려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여기 밀라노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거주증이 없기 때문에(발급까지 1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주치의가 없고(지역마다 주치의가 있어요) 개인 소아과를 찾아가는 일도 힘들지요.

집에 구비해 두었던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으로 버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큰아이가 욕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체온계를 내밀며 말했어요.


“엄마, 나도 열나.”

“열나는데 왜 웃고 있어?”

거짓말하면 다 티가 나는 투명한 아이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며 이실직고를 했네요.


"나도 아프고 싶은데, 소은이랑 뽀뽀를 할까?"

하며 동생에게 다가가는 큰아이. 이렇게 해맑은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애가 타네요.

등짝 스메싱을 날렸습니다.

"빨랑 옷 입어!!!!"


그날 저녁, 체온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네. 맞아요. 큰 아이가 디지털 체온계를 뜨거운 물에 담갔기 때문이죠.

몰랐다고 말하며 또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를 팡팡 쳐주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열은 이틀 후에 내렸어요. 그런데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침을 하다 구토를 하고, 코피를 흘리고, 기침하느라 잠을 설쳤어요.

“엄마 나 무서워….”

아이는 토하다 말고 울먹이며 말했어요.

저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 괜찮다. 내일이면 오늘보다 좀 더 좋아질 거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익힌 엄마의 감각은 감기의 증상이 어떻게 점차 호전되는지 아니까요.



아이의 불안과 근심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단단한 마음뿐인 것 같아요.

확신 없는 엄마의 말과, 불안한 표정은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하지요. 정말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엄마의 작은 심적 변화까지도 알아내더라고요.


다행히도 이내 평온을 찾은 아이는 심심하다며 마늘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웬 마늘이냐고요?

얼마 전부터 아이가 마늘 까기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심심할 때 단순노동을 하면 마음이 조금 평안해지잖아요. 이제 겨우 10인 아이가 그걸 알아버렸나 봐요. 어느새 마늘 까기는 아이의 놀이가 되었고, 아이가 까준 마늘은 스파게티에, 미역국에, 콩나물과 고깃국에, 치킨 양념에 골고루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이의 단단한 마음이 참 고마웠어요.


불안을 아예 없앨 수는 없죠. 아이 대신 고단한 인생길을 대신 가줄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것 같아요. 그것이 아이의 마음도 단단하게 해 주겠지요.



잔기침이 여즉 남았지만, 드디어 학교에 갔습니다. 기침하다 구토를 할까 봐 아이는 염려했어요. 아프면 엄마가 학교로 바로 달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안심하며 두터운 잠바를 입고, 장갑을 끼고, 귀마개까지 하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이가 한 겹 더 단단해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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