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처음에 대하여 (상황 묘사하기)

선미

by 선량

하얀 바탕에 커서가 깜빡인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선미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타닥타닥타닥`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네 ‘타 타 타 타 타’ 소리가 들렸다.

‘으휴, 타닥타닥타닥타닥, 타 타 타 타 타, 으휴….’

깊은 한숨 소리와 머뭇거리는 듯한 키보드 소리, 그리고 주저함이 없는 백 스페이스 소리가 고요한 집안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지 2 시간이 지났건만, 선미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선미를 포함한 4명의 멤버가 선량한 글방에 모였다. 그중에 한 명은 해외에 사는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로 전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카카오톡으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생소했지만, 재밌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경상도에 사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카톡 대화에 참여하는 편이었는데, 선미는 그들의 대화를 엿보기만 해도 괜스레 웃음이 났다.

가족 외에는 카톡으로 이렇게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던 선미는 수시로 울리는 카톡이 처음엔 거슬렸다. 하지만 이내 카톡이 조용하면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먼저 톡을 보낼 용기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선미는 실생활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배경 같은 사람이었다.



선량한 글방의 첫 번째 주제는 “처음에 대하여”였다. 처음 가본 장소, 처음 본 사람, 처음 가본 여행, 처음으로 시작해본 일 등 처음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묘사하며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줌에서 만나 서로의 글을 읽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선미는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첫사랑 이야기 써볼까? 아니야, 그건 좀 식상한 거 같아. 처음 해외여행 갔던 거 써볼까? 인도 가서 고생만 했는 걸 뭐. 첫 키스? 흠… 누구였더라…. 첫 경험? 아 그건 좀 야한데….’


집안일을 할 때도, 밤에 잠들기 전에도, 백화점에 갈 때도, 장을 보러 갈 때도 선미의 머릿속에는 온통 ‘처음’과 관련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엄마, 뭐 해?”

영어 학원에 다녀온 은서가 노트북 너머의 선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언제 왔니?”

“아무것도 아니긴. 벌써 며칠째 노트북만 들고 살면서. 엄마 무슨 일 시작했어?”

“일은 무슨…. 아니야. 배 안 고파? 뭐 먹을래?”

“됐어. 현주랑 떡볶이 먹었어.”

“응, 그래. 그램”


선미는 은서에게 향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노트북에 고정시켰다. 그런 엄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잔소리가 쏟아져 나올 차례인데 아무 말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방으로 들어간 은서는 아침에 나갈 때 모습 그대로인 자신의 책상과 침대를 보고는 한번 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보고도 엄마가 아무 말 안 한다고?’

괜히 마음이 찔린 은서는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책과 노트와 펜을 대충 정리했다. 그리고는 다시 안방문을 빼꼼히 열어 보았다. 여전히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오랜만에 ‘나’ 아닌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글쓰기 힘들진 않으셨나요?”

노트북 화면 가득 작가님의 얼굴이 보였다. 밀라노에 살고 있다는 작가님의 모습은 전혀 먼 나라에 사는 사람 같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내는 진짜 모르겠더라고요.”

작가님의 질문에 경상도에 사는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많이 힘드셨구나…. 글쓰기 습관이 아직 안 잡혀서 그럴 거예요. 몇 번 써보시면 금방 잘 쓰게 될 거예요. 자 그럼, 돌아가면서 써오신 글을 읽어 볼까요?”

“작가님 근데, 꼭 소리 내서 읽어야 합니까? 내는 너무 부끄러븐데. 쓰는 것도 힘들었지마는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기 내는 더 어려운 것 같은데요.”

카톡으로 대화할 때는 몰랐는데 직접 목소리를 듣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니 사투리뿐만 아니라 뭔가 부정적인 태도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기 싫으면 신청을 하지를 말지, 아니 줌에 들어오지를 말지 왜 들어와서 저러는지. 꼭 저런 진상이 있다니까. 회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온라인에도 저런 진상이 있다니….’

선미가 마음속으로 궁시렁거리고 있을 때 작가님이 다시 말했다.

“그러시면 경미 님이 맨 나중에 낭독하도록 할게요. 모두 괜찮으시죠? 그러면 누가 먼저 낭독해 주시겠어요?”

경상도 때문에 작가님이 난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선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도 먼저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선미는 눈치를 살피다 손을 살며시 들었다.

“선미님? 먼저 하시겠어요?”

“네. 제가 먼저 할게요.”

“네. 그럼 모두 소리 음소거 해주시고 선미님 글에 귀 기울여 주세요.”

선미는 미리 출력해둔 종이를 두 손에 쥐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쏴~ 하게 긴장이 되었다. 책상 위에 있는 물을 꿀꺽 삼키고 목을 가다듬은 후 선미는 글을 읽어 나갔다.



제목 : 너를 처음 만난 날.
그날은 새하얗게 눈이 내렸다. 아직 너를 만나려면 며칠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느낌이 이상한 것이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옷장 안에 넣어둔 분만 가방을 꺼내 가장 잘 보이는 거실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빼먹은 것은 없는지 가방 안을 한번 더 확인했다. 그런데 통증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애기가 나오려나 봐.”
그런데 창 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금방 오겠다고 했지만, 이런 날씨에 금방 오긴 틀린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배가 점점 더 아픈데. 어쩌지? 김서방이 오고 있다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
엄마는 금방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배가 점점 더 아파왔다. 그때 퍽 소리가 나면서 아래에서 물이 흘렀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러다 내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119에 전화를 했다. 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구급차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분만 가방을 꼭 껴안고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올랐다. 병원에 도착하니 배가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통 주사를 꼭 맞고 싶었는데 이미 양수도 터졌고 진행이 많이 되어서 무통 주사를 못 놔준다고 했다. 미칠 것만큼 배가 아팠지만.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침대 난간을 꽉 쥐었다. 엄마 아빠와 남편이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엉엉 울고 싶었지만, 뱃속의 아기가 더 힘들어질까 봐 꾹 참기만 했다.
드디어 분만대로 옮겨졌다. 간호사가 힘을 더 주라고 소리치며 내 배를 눌렀다. 열심히 힘을 주고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힘을 주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산모님, 애기가 지금 나오고 싶은데 못 나와서 힘들어해요. 산소 공급이 잘 안 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힘을 주세요.”
아기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머리 나왔어요. 힘 빼세요. 됐어요. 고생하셨어요. 어머 예쁜 공주님이네요.”
온몸에서 힘이 스르륵 빠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너를 처음 만났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분만실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우리 은서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글을 다 읽은 선미의 두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15년이나 지난 일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건강하게 자신에게 와 준 딸아이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선미는 고개를 들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박수를 치는 멤버들 사이로 경상도가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미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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