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쉼표와 마침표

선미

by 선량

“선미 님 글은 쉼표 같은 글이네요. 문장 속에서 쉼표의 역할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큰 역할을 하거든요. 책을 읽을 때 독자들은 글자 하나뿐만 아니라 저자가 쓴 문장 기호를 착실하게 따르며 읽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하죠. 물음표가 있으면 문장 끝을 올리면서 읽고, 느낌표가 있으면 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쉼표가 있으면 숨을 한번 고르고 읽게 되고 마침표가 있으면 한 박자 쉬고 읽게 되죠. 독자들은 그걸 의식하지 못한 채 읽어요.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의식하며 써야 해요.

글을 쓸 때는 독자가 어떤 호흡으로 읽을지를 생각하면서 쉼표를 찍을지 말지, 마침표를 찍을지 말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미 님의 글은 꽤 속도감이 있었어요. 다행히도 중간 중간에 쉼표가 있어서 숨을 고르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문장에 대한 제 생각이었고요, 한 가지 더 팁을 드리자면, ‘나’가 좀 많이 들어가 있죠? 나, 나를, 내가 등등 나를 빼고서도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안 쓰셔도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 빼진 마시고요. 나중에 퇴고하실 때 나를 넣었다 뺐다 해보세요.”


“작가님, 퇴고가 뭐라예?”


잠잠히 듣고 있던 경미가 물었다.


“퇴고는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말해요. 맞춤법을 고치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를 바꾸면서 조금 더 좋은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을 퇴고라고 해요. 퇴고를 많이 하면 할수록 글이 점점 더 좋아지겠죠?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쓸 때 300번 넘게 퇴고한 것으로 유명하죠.”

“아이고야, 내는 노인과 바다 읽다가 마 잠들어 뿌렀는데요. 그게 그리 많이 퇴고한 거래요? 내 다시 읽어봐야겠네.”

경미의 말에 노트북 화면 속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경미님 아까 눈물 훔치시던데…. 선미 님의 글에 감동받으셨나요? 감상평 한번 나눠주시겠어요?”

그 말에 선미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내가 쓴 글에 누군가가 감상을 말한다는 사실이 너무 낯간지러웠다. 그건 선미의 심장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까 글을 낭독할 때보다 더 심장이 쿵쾅거렸다. 더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상도의 감상평이라니….

선미는 지금 이곳이 자신의 방안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바로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분명 자신의 심장 소리와 거친 숨소리, 빨개진 얼굴을 보고 말았을 것이다. 선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았다.


“예…. 저는요…. 사실은…. 제가…. 아이고 마 죄송합니데이. 지가 이런 감정적인 사람이 아인데, 이상하게 눈물이 다 나네요. 와 이라노 참말로.”

벌건 두 눈으로 농을 던지는 경미를 향해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지가요. 애가 잘 안 생겨가 거진 10년을 고생해서 애를 가졌거든요. 참 기쁘대요. 애가 안 생기는 동안에 시어머니 시아부지 눈치가 억수로 보였거든요. 진짜 죄인처럼 살았어요. 근데 어렵게 찾아온 아가 3개월이 못 되어서 또 잘못 되븐기라요. 내는 진짜 그때 콱 마 죽고 싶었다니까요. 어찌나 억울하고, 우울하던지. 다 내 잘못 같고 그랬어요. 근데 진짜 감사하게도 다시 생기가 아를 낳았어요. 아이고마 힘들게 얻은 아들이라코 애지중지 키웠다 아입니까.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오냐오냐 하믄서 아주 귀하게만 키웠어요. 내는 진짜….. 아들 하나 잘 키울라꼬 직장도 다 그만두고 지 하나 잘 키울라꼬 온갖 좋은 것 다 해주고, 공부시키고 다 했는데, 근데 지보고 뭐라 카는지 아십니까? 세상에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하데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데요. 아이고야. 그게 뻘써 5년 전이라얘.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이번 주말에 군대 갑니다. 거 선미님 글 듣다 보이까는 내 옛날 일이 퍼뜩 생각나 눈물이 나뿌렀네요. 내가 마 지금 갱년기라 그래요. 죄송해요.”


화면 속 글방 회원들은 경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미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 속에 담겨있는 엄마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선미는 괜히 마음속으로 툴툴거렸던 것이 되려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아 근데, 글 진짜 잘 쓰네요. 거 작가님이 말씀하신 거 뭐라 했지요? 그 쉼표 같은 글. 아 진짜 그렇대요. 머릿속으로 막 상상이 되고, 내가 얼라 낳을 때가 막 떠오르고 근데 또 따라 숨 쉬고 있는 느낌이 들고. 귀로 듣는데 영화처럼 화면이 쫘악 펼쳐지대요. 진짜 잘 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해요. 너무 부끄럽네요. 글 쓰는 방법도 몰라서 진짜 겨우겨우 썼거든요. 그 딸이 지금은 중2예요. 말도 안 듣고 매일 짜증만 내고요. 다 키우신 경미님께 좀 여쭤봐야 되겠어요. 어떻게 키우셨는지….”

“하이고 내 나중에 기회 되면 말 해주께요. 아주 할 말이 많아예.”

“네, 선미 님과 경미 님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두 분 이름도 비슷하시네요."

그냥 두면 끝없이 말을 이어갈 것 같은 경미의 말을 적절하게 끊으며 작가님이 말했다.


“좀 전에 경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글을 귀로만 들었는데 머릿속으로 장면이 상상이 되는 이유가 뭘까요?”

“음…. 애를 낳아봐서 일까요?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 것 같은데...."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캐다나에 사는 회원이 말했다.

“어, 저는 애를 낳아본 적이 없는데도 상상이 되던데요.”

한쪽 화면을 지키고 있던 20대 후반의 싱글 회원이 말했다.

“네, 그 이유는 선미 님께서 묘사를 잘해주셔서 그래요. 아기가 나오려고 배가 아팠던 상황, 양수가 터진 상황, 그리고 병원에서의 상황 묘사를 잘해주셨어요.”

“아, 묘사….”


"자, 선미 님 숙제하나 드릴게요. 오늘 글과 관련 된 사진을 하나 골라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세요. 그리고 오늘 낭독해주신 글 중에 딱 5 문장만 골라서 써주세요. 필수 해시태그는 #처음 #선량한글방 써주시고요, 나머지 해시태그는 자유롭게 써주세요."

"작가님, 해시태그가 뭐죠?"

선미는 해시태그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던 것이다.

"아, 선미님 이번에 인스타그램 처음 만드셨지요? 해시태그는 내가 올린 사진이나 글과 관련된 주제나 단어 등을 써주는 것인데요, #을 쓰고 그 뒤에 쓰고 싶은 단어를 쓰면 돼요. 한마디로 내 글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은 sns에서 해시태그로 정보검색을 많이 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또 하나 배웠내요. 오늘 수업 끝나고 꼭 올릴게요."





첫 모임이 끝난 후 선미는 노트북에 저장 된 은서의 사진 폴더를 열어보았다. 은서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년도별로 정리해 둔 폴더였다. 물론 최근 폴더엔 사진이 몇 개 없었다. 선미는 가장 맨 위에 있는 폴더로 들어가 은서가 막 태어났을 때 찍은 사진을 열어보았다. 거기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은서가 있었다. 선미는 그 사진을 핸드폰으로 옮기고,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 사진을 올리며 글을 썼다.


14년 전 너를 처음 만난 날,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네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 만으로도 엄마는 무척이나 감사했단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자라주어 정말 고마워.
#처음 #선량한글방 #첫글 #내딸 #사랑해


글을 올리고 얼마 후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렸다. 팔로워가 딱 1명이었는데 어느새 6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4명은 글방 멤버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silverwest 라는 아이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