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오늘 첫날이었는데, 다들 어떠셨어요?”
“아이고 작가님, 저는 이런 거 진짜 난생 처음이에요. 줌도 처음 해보는 거라 억수로 헤맸다 아입니까. 글쓰기도 어려븐데 이 노트북 열고 줌에 들어와가 뭐 하는 것도 내는 참말로 어렵네요. 근데 뭐 처음이니까 그런 거지요, 맞죠? 다음엔 더 잘할낍니다. 그리고 진짜 기대도 몬했는데 참…. 좋네요. 거 뭐라카노… 그… 그 뭐지요? 요즘 애들이 말하는 그…..”
“힐링?”
“아 맞네, 맞아요. 역시 사해 님 어려서 똑똑하시네요. 힐링시간 맞네요. 이거 하기 전까지 억수로 고민했는데요, 진짜 하길 잘한 거 같아요.”
“경미 님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어요?”
“아… 저는 사실, 제 이야기를 이렇게 마음껏 해본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음…. 그런데 글을 계속 써보고 싶어요. 책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한번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의 편견과 한번 싸워보고 싶기도 하고요. 제 딸을 위해서라도요.”
2시간 내내 조용하던 유일한 남자 멤버 준영이 말했다. 사해는 준영의 외모로 봐서는 자기 또래와 비슷해 보였는데, 아이가 있다는 말에 살짝 놀랐다. 게다가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나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혼자서 딸을 키우다니…. 사해는 그가 낭독했던 “딸에 대하여”라는 글을 들으며 많이 부끄러웠다.
“네. 모두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처음인데요, 용기 내어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오늘은 처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상황묘사를 해보았어요. 상황묘사 하는 게 쉽진 않지만, 재밌기도 하죠. 상황묘사를 잘하면 그 상황이 영화처럼 샤샤샥 그려진다는 장점이 있어요. 특히 대화체를 사용하면 긴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상황이 잘 전달될 수 있어요.”
사해는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작가님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상황묘사와 대화체 옆에 빨간펜으로 별표를 세 개씩 그렸다.
“다음 주제는 '엄마에 대하여'입니다. 다음 주엔 인물묘사를 주로 해볼게요. 인물묘사 중에 가장 좋은 주제가 바로 ‘엄마’인데요, 엄마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엄마의 존재와 부재는 다양할 것 같아요. 그게 실존적인 존재와 부재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존재와 부재일 수도 있어요. 특히 직접 보지 않았지만,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모습이 상상될 수 있게 묘사해 주세요.”
“작가님, 좀 어려운 것 같은데요? 엄마라….”
“어려운 주제지만 꼭 한 번은 써봐야 할 주제이기도 해요. 그럼 모두 잘 지내시고 일주일 뒤에 만나요!”
노트북 화면 가득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두 시간 만에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 안도하게 만들었다. 직접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뒤에서 내 뒷담화를 하지도 않을 사람들.
줌 화면이 꺼지면서 손을 흔들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사해는 그대로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해는 오늘, 처음 겪어본 공황장애에 대한 글을 쓰고 낭독했다. 낭독하는 중간중간 목이 매여왔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낭독했다. 그런 사해를 향해 멤버들은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사해님, 많이 힘드셨겠어요. 사실 제 남편도…. 공황장애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이해해요. 그 경험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도 큰 발전인 것 같아요.”
사해는 작가님의 그 위로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사해에게 “이해해요” 이 한마디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라….. 엄마라니…. 사해는 엄마의 한숨 가득 뾰족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 연락을 하지 않은지도 두 달이 넘었다. 엄마는 사해가 잘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전에는 오빠 동운처럼 의대에 가지 못한 걸 한심스러워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와 매번 비교를 하며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냐고 몰아세웠다.
사해는 작가님이 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엄마의 존재와 부재는 다양할 것 같아요. 그게 실존적인 존재와 부재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존재와 부재일 수도 있어요.”
사해는 20대가 된 후부터 엄마는 있지만,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빠르게 독립을 했다. 엄마와 딸 사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끈끈해진다고 하는데, 왜 자신과 엄마는 점점 더 멀어지는지….
'엄마라는 존재의 정서적 부재 상태'
사해는 그 모든 원인제공자가 바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실존적으로 부재 상태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 상태. 즉 엄마의 죽음이 아닌가?
엄마가 죽는다면 슬플까? 지금을 후회할까?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속엔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으니, 정서적으로 엄마가 죽은 상태인 걸까?
그러다 문득 엄마 없이 혼자 딸을 키우고 있다는 준영이 떠올랐다. 그의 딸은 엄마가 없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모임이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생각의 단위가 깊어지자 머리가 묵직하게 아파왔다. 사해는 노트북을 그대로 덮었다. 그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엄마에 대해 어떻게 글을 쓸까 이리저리 생각했다.
'엄마 볼에 점이 있었는데, 아직도 있던가.... 엄마의 헤어스타일이 뭐였더라....'
어떻게 엄마를 묘사하며 글을 쓸까 생각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사해는 약을 먹지 않고 잠들어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