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사해는 몇 시간 전부터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통화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카톡 메시지로 대화하는 게 익숙해진 후로 누군가와 통화로 직접 대화하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해는 이모티 보이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 장문의 글 대신 이모티콘 하나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직접 통화를 하는 대신 이모티 보이스가 간단하게 말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해는 결국 통화버튼을 누르는 대신 카카오톡 메시지 창을 열었다.
‘아빠’
‘응, 우리 딸.’
‘뭐 하고 계셔?’
‘저녁 먹고 쉬고 있지. 넌 잘 지내고?’
‘응. 엄마 집에 있어?’
‘엄마 저녁 먹고 운동 나갔지. 왜? 엄마한테 전화해 보지.’
‘아니야. 됐어. 혹시 엄마 최근 사진 있어?’
‘엄마 사진? 글쎄…. 아빠 핸드폰에 엄마 사진이…..’
‘없어?’
‘한번 찾아볼게. 근데 왜? 요즘 몸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 쉬니까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너 연락 기다리는 거 같던데, 먼저 연락 좀 하지 그러니.’
‘아빠, 엄마 사진 있으면 보내줘요.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래 알았다. 찾아볼게.'
사해는 아빠가 엄마의 사진을 보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사진은 오지 않았다. 사해는 다시 카카오톡을 열고 새로운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왜’
‘안 바빠?’
‘바빠. 왜?
‘혹시 최근 엄마 사진 있어?’
‘엄마 사진? 있겠냐. 내 딸 사진뿐이다. 왜?’
‘아, 됐어.’
‘엄마한테 직접 연락해.’
사해는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생각나는 건 엄마가 화내고, 잔소리하고, 한숨 쉬는 모습뿐이었다. 이런 걸 묘사해도 되나…..
그래도 마감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오늘은 꼭 써야 했다. 사해는 자세를 고쳐 앉아 노트북을 열였다. 두 달 전에 봤던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의 얼굴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제목 : 엄마의 얼굴엔 외할머니가 있다.]
엄마의 왼쪽 볼에서 광대뼈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까만 점이 하나 있다. 진한 초콜릿 색의 점을 엄마는 싫어했지만 나와 오빠는 그 점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에 그 점을 누르면 엄마는 방귀 소리를 냈다. 엄마는 그 점이 방귀 점이라고 말했다. 오빠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의 얼굴에도 똑같은 점이 있었는데, 할머니도 똑같은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점도 유전인 걸까? 엄마의 얼굴엔 외할머니가 있다. 진한 쌍꺼풀과 큰 눈, 반짝이는 눈동자, 미간의 주름, 초콜릿 색의 점, 끝이 몽글몽글한 코,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입,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언제나 핑크색으로 빛나던 입술, 그 입에서 나오는 뾰족한 말까지.]
“카톡”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묘사를 하던 사해는 아빠가 보낸 카톡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사해야, 아빠 핸드폰에 엄마 사진이 없네. 그래서 방금 사진 한 장 찍었다.'
얼마나 가까이에서 찍은 건지 엄마의 얼굴이 크게 찍혀 있었다. 사해는 그 사진을 좀 더 크게 확대해 보고는 조금 전에 자기가 쓴 글이 모두 거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의 왼쪽 볼에는 더 이상 점이 없었다. 진한 쌍꺼풀은 아래로 축 처져 크고 반짝이던 눈동자를 절반이나 가리고 있었다. 눈 아래로 주름이 잔뜩 나 있었고, 코 양쪽으로 팔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언제나 핑크색이었던 입술은 창백해 보였다.
‘아빠, 엄마 얼굴에 있던 점 어디 갔어?’
‘아, 그 점? 엄마가 엄청 싫어했잖아. 그거 뺀 지가 언젠대.’
엄마의 얼굴엔 더 이상 외할머니가 없었다. 인상을 쓰면 생기는 미간의 주름, 짜증이 가득 담긴 눈빛, 앙 다문 입술 사이로 보이는 고집. 그건 바로 사해,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해는 다시 고개를 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번엔 딜리트 키를 눌렀다. 제목까지 모두 지운 후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제목 : 엄마의 얼굴엔 내가 있다.]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외할머니를 찾곤 했다. 엄마의 왼쪽 뺨에 있던 초콜릿색 점을 보며 할머니 얼굴에 있던 점을 떠올렸고, 엄마의 진한 쌍꺼풀을 보며 할머니의 눈을 떠올렸다. 너무 많이 닮은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방귀 점도 없었고, 진한 쌍꺼풀도 없었다. 엄마처럼 몽글몽글한 코도, 분홍빛으로 빛나는 입술도 가지지 않았다. 내가 주워온 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방귀점을 특히나 좋아했다. 그 점을 누르면 엄마는 방귀 소리를 내면서 그 점을 방귀점이라고 했다. 오빠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할머니 얼굴에 있는 점을 누르면 할머니에게서도 똑같은 방귀소리가 났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런 점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내 얼굴엔 그런 점이 없었다. 하루는 매직 팬을 들고 내 뺨에 까만 점을 만들었다. 엄마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내 얼굴을 사정없이 물로 씻겼다. 비누를 내 얼굴에 바르고 박박 문질렀다. 비누가 내 눈으로 들어가 매웠지만, 엄마한테 또 혼이 날까 봐 꾹 참았다. 박박 닦았지만, 매직 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엄마와 같지 않은 것이 정말 싫었다.
엄마의 얼굴을 묘사하려 핸드폰 사진을 뒤졌다. 그런데 엄마가 없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았다. 마스크 너머의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빠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아빠의 핸드폰에도 엄마의 사진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 오빠에게 부탁을 했다. 역시나 오빠의 핸드폰에도 엄마 사진은 없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끊임없는 잔소리와 타박하는 말이 싫어 일찌감치 내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공부를 하고, 직장에 다니고, 독립을 해 혼자만의 시간을 영유할 때 엄마는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그건 마치 엄마의 볼에 있던 방귀점이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시간이다.
점이 사라진 엄마의 얼굴엔 내가 있다. 세상의 불만을 모두 짊어진 미간의 주름, 짜증이 가득 담긴 눈빛,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앙 다문 입술 사이로 보이는 고집.
그건 모두 엄마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울 속에서 매일 보던 바로 내 모습이었다.
사해는 여기까지 쓰고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작가님이 퇴고할 때 주의사항을 몇 가지 알려주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소리를 내어 다시 읽어보았다. 민망한 마음이 들어 다시 수정을 할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수정을 하기 시작하면 아마 또 밤을 꼴딱 새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해는 아무것도 수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원고를 작가님께 보냈다. 어떤 피드백이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한 글을 썼으니, 한고비 넘긴 것 같았다.
사해는 카카오톡 메시지 창을 열었다.
‘엄마, 얼굴에 있던 점 언제 뺐어?’
사해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1’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