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두 번째 모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두 잘 지내셨나요? 걱정했었는데 모두 마감 전에 글을 보내주셨더라고요.”
“하이고 마, 작가님. 지는 돌아가신 울 엄마 생각나가 매우 힘들었다 아입니까. 마 묘사 그런 거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내가 잘못한 것만 생각나더라니까예.”
언제나 가장 활기 넘치는 경미가 흥분하며 말했다.
“경미님 많이 힘드셨나 봐요.”
“친정 엄마 돌아가신 지 딱 5년 됐는데요, 그동안 그냥 보고 싶어도 참고, 눈물 날라케도 참고 했었거든요. 근데 지나주에는 마, 글 쓴다고 쓰다가 눈물 콧물 쭉쭉 뺐다 아입니까. 아 그란데 그리 울고 나니까는 가슴이 후련해 지대요. 그래서 그냥 막 엄마 생각나는 대로 썼지요. 작가님이 알려주신 방법은 하나도 생각이 않나대요.”
경미의 솔직한 말에 화면 속의 다른 회원들이 입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괜찮아요. 글을 잘 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평소에 떠올려보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고, 참고 있던 감정도 들여다보는 게 글쓰기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어요?”
사해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살짝 손을 들었다.
“네. 사해님.”
“어…. 사실 저는 엄마랑 사이가 조금 안 좋았었어요. 엄마랑 연락도 안 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글 쓰면서 엄마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어요.”
“어머, 사해님, 어머니와 화해를 하신 건가요?”
“아, 네. 근데 어제 또 싸웠어요. 그래도 마음이 그 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엄마가 많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느낌?”
“네, 그럼 사해님 글을 먼저 함께 들어볼까요?”
“아, 네. 그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해는 미리 프린트해 둔 원고를 두 손으로 공손이 들어 올렸다.
카톡
1 작년 봄에 뺐잖아. 몰랐니?
왜 뺐어?
1 왜 빼긴, 보기 싫으니까 뺐지. 나이 드니가 점이 더 꼴 보기 싫어. 그래서 참다 참다 빼버렸어. 이제 이런 거 안 참으려고. 그동안 너무 많이 참았거든. 넌 웬일이야? 연락을 다 먼저 하고
그냥 했어.
1 주말에 집에 한번 와. 너 좋아하는 열무김치 담가놨어. 와서 가져가.
알았어.
1 온다고?
응.
1 같이 나가서 점심 먹을까? 여기 상가에 맛있는 식당 생겼던데.
응, 알겠어.
1 진짜? 웬일이야?
사해는 이런 엄마의 반응이 멋쩍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원래 이런 것일까. 싸웠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떠드는 사이. 쉬지 않고 날아오는 카톡 소리에 사해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며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한번 터진 엄마의 말은 끝날 줄 몰랐다. 사해는 진동 소리를 무시하고 잠을 청하려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테이블에 둔 핸드폰을 들고 카톡 창을 열었다.
1 사해야.
1 꼭 와.
1 딸 보고 싶었다.
1 먼저 연락해 줘서 고맙다.
1 넌 어쩜 성격이 나랑 똑같니? 기지배야.
1 주말에 꼭 와.
사해는 변함없는 엄마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긴 엄마의 메시지에 사해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응.
점이 사라진 엄마의 얼굴엔 내가 있다. 세상의 불만을 모두 짊어진 미간의 주름, 짜증이 가득 담긴 눈빛,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앙 다문 입술 사이로 보이는 고집.
그건 모두 엄마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울 속에서 매일 보던 바로 내 모습이었다.
사해의 낭독이 끝나자 경미가 경상도 사투리로 급하게 말했다.
“아이고마 사해 님 어머니는 억수로 좋겠네요. 이리 엄마를 생각해 주는 딸이 다 있고. 이리 싸우고 티격태격 할 딸이 있는 기 진짜 좋은 기라요. 우리 아들은 내가 전화하면 와 전화했느냐고 막 그래요. 뭐 이유가 있어야 전화하는 사인가 우리가.”
“저 좋은 딸 아니에요. 연락도 잘 안 하고, 만나면 맨날 싸우기만 해요. 엄마는 절 못마땅해 하시거든요.”
사해의 말에 화면 속 회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엄마가 돼 봐야 알 거예요. 자식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언제나 조용히 지켜만 보던 캐나다에 사는 은영이 대답했다. 은영의 말에 다른 엄마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해님께서 인물 묘사를 참 잘해 주신 것 같아요. 특히 엄마의 점을 잘 묘사해 주셨는데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사해님과의 관계를 점 하나로 잘 연결시킨 것 같아요. 재밌기도 했죠?”
“네~”
“사해님의 글은 에세이지만 소설 같은 에세이였던 것 같아요. 제가 주로 쓰는 에세이기도 한데요.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경험한 사실이지만, 거기에 약간의 과장과 허구를 더해서 쓰는 거죠. 저는 그걸 픽세이라고 부르곤 해요. 에세이에 픽션을 더한 거죠.
뭐, 이건 제가 그냥 만든 말이기도 해요. 호호호호
암튼 사해님 글 재밌었어요. 어머니께 한번 보여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두 분 사이가 그 전과 조금 달라질 것 같은데요?”
사해는 작가님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또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빠의 입장도 궁금한데요?”
유일한 남자 회원인 준영을 향해 작가님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준영은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리액션도 없었다.
“사실…. 제 아이가 여섯 살이에요. 엄마는 없고 할머니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서요. 음…. 이번에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데 저는 음….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준영의 말에 화면 속 회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이미 잘 알겠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