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삶을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기

준영

by 선량

글방에서 유일하게 남자인 준영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대학교… 졸업반일 때… 여자친구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저는 고민이… 되긴 했지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여자친구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여자친구는… 아니었어요. 여자 친구는 아직… 학생인데…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지요. 교사가 되고 싶어 했거든요.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어… 더 말해도 되나요?”

“네, 그럼요. 다음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여자 친구는 아이를 지우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전 그게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키우겠다고… 했어요…."


단어와 단어 사이에 뜸을 들이며 천천히 말하는 그의 말투는 마치 꾹꾹 눌러쓴 손글씨 같았다. 느리지만 확신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미쳐 다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거나 말이 너무 느리다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글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렇게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준영은 생각했다. 지금껏 꾹꾹 눌러 두었던 이야기가 술술 터져 나와버렸다. 그건 아마도 온라인이라는 세상 때문인 것 같았다.

만날 일도,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 오직 글로만 만나는 이 사람들은 자신을 전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편견도 오해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나, 억수로 힘들었겠네요. 부부가 같이 아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세상에나 아빠 혼자 아를 키웠다 카니, 내는 뭐 힘들다는 말도 이제 몬하겠네요. 아이고 장하네요. 진짜.”

준영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경미가 말했다.


“네. 좀 많이 힘들었어요. 특히 저희 어머니께 정말 죄송했어요. 저 대신 아이 봐주시느라… 아이에게도 미안하고요. 이번에 엄마에 대해 쓰는데 그 미안한 감정이 너무 차올라서 쓰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분명 힘들고 슬프고 속상한 이야기지만, 꼭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가 주는 기쁨도 있었고, 아빠라는 뿌듯함도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어요.”


그때 조용히 듣고 있단 작가님이 말했다.


“글을 쓸 때 내 감정을 설명하려고 하면 한 문장으로 끝나버릴 수 있어요. ‘너무 슬펐다.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면 더 이상 내 감정을 쓸 자리가 없죠. 대신 내 감정을 보여주세요.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스마트폰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한 손에 들어오는 전화기로 엄청 편리하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의 크기와 색깔, 무게, 기능, 촉감 느낌 등등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줘야 그 사람은 조금이나마 스마트폰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겠죠.

감정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말고, 내가 그 감정을 자세히 묘사해 주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말에 화면 속 모든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설명하듯이 보여주는 글쓰기. 준영은 짙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네, 그럼 다시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회원님들께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다들 엄마시니까. 아, 사해님은 아니시지만. 암튼 다들 여성 분들이니까요.

사실 제 아이가 여섯 살인데 그동안 할머니를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물론 입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하지만 유치원에 다니면서 친구들의 엄마를 보니까 자기도 엄마 생각이 나나 봅니다. 아이에게 아직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말을 해야 할까요? 아이를 계속 속이는 기분이 들지만 아직 어린아이라서 충격 먹을 것 같기도 해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준영의 질문에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좀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말을 잘 못해서….”


그때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은영이 말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요. 그리고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많은 것을 알고 있더라고요. 제 아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도 이혼을 하고 아이만 데리고 캐나다로 왔어요. 아이가 네 살 때였지요. 캐나다에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아이가 이혼에 대해 이해하기 전부터 미리 말했어요. 아빠는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다고 말이죠. 캐나다엔 그런 이혼 가정도 많고, 재혼 가정도 많아서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선미가 은영의 말에 짧게 말을 덧붙인 후 다시 입을 닫았다.


“혹시 아이와 관계가 좋은 편인가요?”

“네. 좋은 편이에요. 아빠 밖에 모르거든요. 물론 할머니도 좋아하지만, 잘 때는 꼭 아빠를 찾아요.”

“그렇다면 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의 유무가 아니라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니까요.”

“맞아요. 저는 부모님과 오래 살았지만, 보시다시피 엄청 싸웠어요. 저를 이해 못 하는 엄마 밑에서 크면서 정말 벗어나고 싶었어요. 뭐,,, 지금은 이해하지만요.”

은영과 사해의 긍정적인 답변에 침울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환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런 모임도 처음이고, 글쓰기도 정말 오랜만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글쓰기 보다도 인생 선배님들께 삶을 배우는 기분입니다.

그럼 부족하지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준영은 어떻게 아이의 엄마를 만났고, 또 어떻게 아빠가 되었는지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글을 낭독했다. 준영의 낭독이 끝난 후 시계를 보니 끝날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자, 이제 마무리해볼까요?

사실, 글은 내가 살아낸 만큼 써지는 것 같아요. 인생에 굴곡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 굴곡을 글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변명이 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한 글은 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쓰는 ‘진술서’가 되고 말지요.

진술서가 아닌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사건 중심이 되어야 해요. 하나의 글에 하나의 사건. 그 사건을 둘러싼 전후사정과 인물을 써준다면 더욱 풍부한 글이 될 수 있겠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을 설명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준다면, 그건 변명이 아니라 근거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 위해서. 내 삶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독자가 되는 것이죠. ”


작가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자, 다음 주제는 “음식”입니다. “나는 000 음식이다”인데요, 나를 어떤 음식에 비유해 주세요. 은유와 비교의 문장을 써주셔도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소울 푸드, 싫어하는 음식 등등 다양할 것 같아요. 그 음식들 중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을 골라서 써주세요.”




준영은 노트북을 닫고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삶과 글은 전혀 다른 분야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삶을 글로 쓰다 보니 절대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삶에 변명이 아닌 근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아이 옆에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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