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밀라노 프랑스학교 이야기

by 선량



주로 다음날 숙제를 물어보거나 정보공유 용도로 사용하는 학부모 단톡방에 평소와 다른 메시지가 올라왔다.


“화요일에 스포츠 클래스를 계속 안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나요? 그 시간 대신 아이들이 모여서 무슨 토론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신체활동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주일에 고작 두 번뿐인 스포츠 시간인데 그 시간을 다른 용도로 할애해도 괜찮은 걸까요?”


“우리 아들도 불만이 많더라고요. 스포츠를 하고 싶은데 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이거 선생님께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왜 스포츠 시간이 토론 시간으로 바뀌었는지도.

내 딸아이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미주알고주알 모두 말해준다. 가끔은 글로 쓰는 것을 허락한다며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준다. 이번에도 고맙게 글로 쓰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들은 한 반에 25명. 그중에 남자아이가 13명. 여자 아이가 12명이다. 조금씩 남성성과 여성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남녀의 놀이 차이, 신체적 차이의 정도가 점점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반에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이유도 없이 여자 아이들을 놀리거나 괜히 시비를 걸거나, 지나가다 툭툭 치는 아이들.

그런 남자아이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놀리는 남자아이에게 가서 따지는 아이들, 시비를 걸거나 때리면 달려가서 더 씨게 때려주는 아이들,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하는 아이들.

(내 딸이 그중 한명이다…)

물론 남녀 어울려서 장난치며 노는 아이들도 있다.


문제는 스포츠 시간이 되면 이 문제가 더 도드라진다는 점이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공놀이를 하다가 여자 아이가 실수를 하면 야유를 보내고, 자기 팀이 지면 너 때문에 졌다며 따지고, 결국 여자 아이의 눈물바람으로 스포츠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하루는 남녀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그 중에 남자 아이 때린 아이가 내 딸…. ㅜㅜ)



“우리 남자 여자 너무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스포츠 대신 먼저 토론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제안을 한 건 다름 아닌 남자 아이들 중 가장 장난꾸러기인 노에 라는 아이였다.

노에의 제안은 바로 실행으로 옮겨졌고, 화요일마다 운동장으로 나가는 대신 교실에 둘러앉아 학급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의 주요 쟁점은 “왜 스포츠 시간에 서로 싸우게 되는가?” 였다.

사회는 반대표가 하고, 발언권을 부여하는 사람 따로, 아이들이 하는 말을 노트에 적는 사람 따로,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한다.

이 토론은 가장 최선의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 한다고.


”엄마 나도 한 마디 했어. 여자애들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불만이라고 하길래 남자애들이 여자애들한테 자꾸 잘못한다고 하니까 더 하기가 싫어진다고 말했어. 칭찬을 해줘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친구들이 박수 쳐줬어.“

지난 주 토론 후에 딸아이가 말했다.

“근데 빅토리아가 했던 말이 나는 제일 좋았어. 불만이 있어도 직접 말로 하지 말고 속으로 혼자 말하면 된다고, 그러면 싸울 일도 없고 기분 나쁠 일도 없을 거라고. 진짜 괜찮은 좋은 생각 같지?”

“그래서 결론이 난 거야?”

“아니, 아직 아니야.”


벌써 몇 주째 토론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걸 보니 아직 최선의 결론이 안 난 모양이다.




이 문제가 학부모 단톡방에 언급된 이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메일의 제목은 “vivre ensemble! (함께 사는 것!) 이었다.


부모님들께.

반 대표가 화요일 스포츠 시간에 진행하고 있는 "함께 살기" 세션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연초부터 우리는 스포츠 세션 동안 학생들 사이에 많은 존중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아직 차이, 연대, 팀워크라는 개념을 통합하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부적절한 몸짓을 하고 결과적으로 말다툼하고 울게 됩니다.
어떤 소년들은 소녀들 또는 그들보다 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데,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학생들에게는 팀 스포츠 세션이 불안한 순간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팀 게임을 재개하기 전에 "함께 사는 것"의 기본을 다지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그들 대부분은 이 교류의 순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는 화요일 아침에 학급과 함께 해결책을 찾고 오후에 우리 시간의 집단 스포츠를 모두를 존중하고 평온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토론하면서 이 괄호를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프랑스어 메일 내용을 번역하였습니다. )


선생님의 메일을 읽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렸다.


틀림없이 여성과 남성이 서로 협력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에게는 남녀의 결합을 통해 최고의 만족과 완벽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이론에 동조하려는, 어쩌면 비이성적일 수도 있는 뿌리 깊은 본능이 있어요.
<자기만의 방>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테고,
<자기만의 방> 중에서


이 책은 최초의 ‘페미니스트’ 책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페미니스트를 떠올리기 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다. 말 그대로 가장 작은 단위이다. 그 위로 드리워지인 우리의 역할은 자녀, 부모, 학생, 선생, 대표, 직원, 등등 너무나도 다양하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여러 역할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가가 아닐까?가정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 회사에서 약자에 대한 존중,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건 남성일 수도, 여성일 수도 있다.


결국 함께 사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인 것이다.



선생님의 이메일로 학부모 사이의 불만은 쏙 들어갔다. 아들을 키우는 부모대로, 딸을 키우는 부모대로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발표수업이 일상인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