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난초 아이를 소개합니다!(내성적인 아이에 대해

밀라노 프랑스학교 이야기

by 선량

3학기 중 첫 학기가 끝날 무렵, 담임 선생님과 일대일 면담이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을 했다. 프랑스어를 여전히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영어를 조금 말할 수 있어서 서로 아주 간단하고 쉬운 영어로 상담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큰아이에 대한 평가는"아이가 너무 참여를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였다.

이미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학년이 새로 바뀔 때마다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치원생이었을 때는 6개월 정도 걸렸고, 학년이 올라간 후에는 3개월 정도가 걸렸다.

아이의 내성적인 성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설득시킬만한 말주변이 나에겐 없었다. 더욱이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을 영어로 설명하는데 선생님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아이가 원래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다. 한국말도 잘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좋아질 것이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말도 잘 안 하고 발표도 전혀 안 하고, 발표를 하더라도 목소리가 너무 작다고 했다. 이 상태로라면 프랑스어가 많이 부족하며 프랑스 학교에 계속 다니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속상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까지.

여러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선생님께 서운했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집에서 매워줄 수 없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였다. 아니 내가 게을러서였다.

글 쓰는 일과 글을 쓰게 하는 일, 집안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거의 방치해 둔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아이들을 가르칠 지식이 나에게 없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도 생존영어만 하고......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공부를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보기 좋은 포장지로 둘둘 감싸서 내놓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잡았다.

"너 진짜 잘 몰라서 말을 안 하는 것이냐"로 시작해서, "이 학교 계속 다닐 거면 하기 싫어도 말을 해라! 발표도 네가 노력해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던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보다 더 속상한 사람은 바로 당사자인 아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왜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하지 못했던 것인지..... 역시나 후회할 말을 쏟아내고서 자괴감에 빠졌다.




어떤 아이들은 난초와 유사해 쉽게 시들지만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강하고 근사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난초 아이는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 양쪽 모두에서 좀 더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섬세함과 장점은 한 덩어리로 온다. 고 반응 아이가 좋은 양육과 보살핌을 받고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자라면, 저 반응 아이들에 비해 정서 문제가 적고 사교 기술도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아이들은 지극히 공감을 잘하고, 다정하며, 협조적이다. 타인과 잘 협동한다.
<콰이어트, 수전 케인>
서두르지 않는다. 아이에게 작은 걸음 하나하나가 커다란 도약이다. 마침내 아이가 물고기처럼 수영하는 법을 배우면 물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에도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콰이어트, 수전 케인>



콰이어트, 이 책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내향인들에 대한 책이다. 분명 자기 계발서인데 나에게는 육아서로 다가왔다.

나의 내성적인 성향이 거울처럼 비쳐서 위로가 되기도 했고, 내 아이의 모습이 더 크게 투영되어 반성을 하며 읽었다. 내 아이가 책에서 말한 바로 '난초아이'이다.


이 책에 의하면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타고난 성향이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학교에서는 수줍어하는 아이들을 문제가 있는 아이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심한 내향인이었지만, 지금은 약간 외향인에 가까운 내향인이 되었다. 성격이나 성향이 고정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 걸 내 모습을 통해 이미 안다. 그래서 내 아이들도 적절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내성적 또는 외향적인 모습을 떠나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아이에게 퍼부었던 말을 다시 주워 담을 길이 없어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다시 방치 같은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수줍어하고 소극적이라는 선생님의 말보다 집에서 까불고 춤추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며칠 전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손들고 발표했어."

"정말?"

"응, 선생님이 엄청 좋아하더라. 내가 손들었다고."


며칠 후 아이가 다시 말했다.

"엄마, 오늘 내가 발표했는데 목소리도 크게 하고 잘했다고 칭찬받았어."


내성적이고 느린 난초 아이가 드디어 교실과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적응이 된 모양이다.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3개월이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라. 밀어붙이지 말라."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한다는 점을 전달하면서 아이가 조금씩 걸음을 내딛도록 격려할 것이다."
<콰이어트, 수전 케인>





마침내 아이가 물고기처럼 수영하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에도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 같다.


우리 집 난초는 언젠간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아이가 어떤 꽃을 피울지 더욱 기대된다.



이 글은 슬로우리딩 북클럽 8기에서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고 쓴 에세이를 수정한 내용입니다.


슬로우리딩 북클럽은 함께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단상을 쓰고, 에세이까지 쓰는 독서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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