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돈가스처럼 살고 싶어!

준영

by 선량


오랜만에 쉬는 주말이다. 준영은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있다. 세 번째 글감인 음식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도통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그럴수록 글은 더 써지지 않았다.


준영은 특별한 취향이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먹는 일에 큰 즐거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도 준영에겐 노동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민이 나를 더 힘들어했던 걸까….

음식에 대한 글을 생각하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의 여행을 떠난 것 같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준영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싸고 양이 많은”음식이었다. 싸고 양도 많고 맛도 좋은 음식이 뭐가 있을까…. 요즘 들어 그런 음식은 점점 더 찾기 힘들어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비주얼적인 음식을 선호한다고들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리면 인기를 끌 수 있는 그런 특이한 음식. 그게 바로 “취향”이라고들 했다.

아무런 취향이 없는 준영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아빠 뭐 해?”

거실에서 만화를 보고 있던 현수가 준영 곁으로 와서 물었다.

“응, 아빠 잠깐 일하고 있어. 왜?”

“나 심심해.”

“그래? 음…. 아빠랑 뭐 하고 싶어?”

“아빠 나 돈가스 먹고 싶어.”

“돈가스?”

“응. 저번에 가영이랑 가영이 엄마랑 같이 가서 먹었던 돈가스. 진짜 크고 맛있었어.”

“그래? 거기가 어딜까…. 알겠어. 아빠가 가영이 엄마한테 물어볼게.”

“응, 아빠 오늘 일 하러 안 가?”

“응, 오늘은 안 갈 거야. 아빠랑 돈가스 먹으러 가자.”

“오예~”

현수는 신이 나서 거실로 뛰어갔다.

가영이는 현수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로, 바로 옆 동에 산다. 가영이 엄마가 회사 일로 바쁠 때면 현수 할머니가 현수와 함께 가영이도 돌봐주곤 했다. 준영이는 휴대폰을 들고 가영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돈가스와 우동을 주로 파는 가게의 위치는 준영의 병원 근처였다. 언제 거기까지 가서 돈가스를 먹고 왔던 것일까…. 준영은 그동안 현수에게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출근하기 위해 타던 지하철을 오늘은 돈가스를 먹기 위해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탔다.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와의 외출이 즐거운지 쉬지 않고 쫑알거렸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는 안아달라며 손을 벌렸다. 준영은 훌쩍 커버린 현수의 시간을 실감하며 아이를 꼭 껴안았다.



休(휴), 돈가스 집은 준영이 다니는 병원에서 100미터 거리에 있었다. 준영은 혹시나 병원 직원들이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준영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다들 알지만 모른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준영은 생각했다. 그런 소문은 금방 퍼지기 마련이니까. 그나마 아직 배려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바쁜 주말에 100미터나 떨어져 있는 식당에 갈 수 있는 직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배달을 시켜 먹는다면 또 모를까.


준영은 현수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직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안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말 점심, 식당은 외식을 하는 사람들로 분볐다. 다행히도 준영과 형수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남아있었다.

테이블에는 메뉴를 볼 수 있는 큐알코드가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큐알코드를 아무리 찍어도 메뉴가 뜨지 않았다. 큐알코드로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 겨우 온라인 메뉴판을 볼 수 있었다. 준영은 자신이 세상의 변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어머, 준영 쌤. 오늘 쉬는 날 아니야? 웬일이야? 현수랑 같이 밥 먹으러 왔구나!”

준영은 하이톤의 경쾌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외과 병동의 책임 간호사인 김간호사님이었다. 병원 유니폼 위에 가디건을 걸친 걸 보니, 데이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로 나온 모양이다.


“아, 선생님. 점심 드시러 오셨어요? 저는 현수가 돈가스 먹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아 그랬구나. 나는 후배가 와서 점심 먹으러 왔어. 그럼 맛있게 먹어.”

“네. 선생님.”

준영은 김간호사와 인사를 하며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는데, 선뜻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준영은 이내 핸드폰으로 얼굴을 돌리고 메뉴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빠, 난 돈까스.”

“응, 그럼 아빠도 돈가스. 여기요!, 돈가스 키즈 하나랑 왕 돈가스 하나 주세요.”

돈가스의 비주얼과 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적당한 두께의 돼지고기에 두툼한 튀김옷, 기름에 바짝 튀겨 기름기가 살짝 도는 그 맛. 돈가스 소스 역시 특별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그 맛이었다. 준영은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왜 이 돈가스가 먹고 싶었을까….


“ 현수야, 여기 돈가스가 맛있었어?”

“응”

“왜?”

“가영이랑 가영이 엄마랑 같이 먹었으니까.”

“아…. 가영이랑 같이 먹어서 더 맛있었던 거야?”

“응, 가영이랑 막 노래 부르면서 먹었거든.”

“그럼 아빠랑 와서 먹는 것도 맛있어?”

“응.”

“왜?”

“아빠니까!”


준영은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음식의 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글은 돈가스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아는 그 맛, 특별할 것 없는 돈가스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식.

준영은 자신이 돈가스처럼 평범하지만, 모두에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 이미 사랑에 실패한 자신이 누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저… 혹시…. 김준영 씨 아니세요?”

돈가스를 다 먹어갈 때 즈음에 뒤에서 준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준영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아까 김간호사 옆에 있던 젊은 여자였다.

“누구…. 저를 아세요? 어….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저도 긴가민가 했어요. 저 감 사해예요. 글방에서 함께 글 쓰는…..”

준영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영은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실제 삶 속에 갑자기 등장한 사해가 너무 낯설게 느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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