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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13. 2023

즐거움의 싹을 틔우기까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희노애락애오욕 중에 "락"

방학 동안 느슨하게 하루를 보내던 아이들이 개학과 함께 분주하게 등교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본 학교 친구들의 키가 쑤욱 자란 듯 보였다. 여전히 그대로인 듯한 내 아이들의 키를 눈어림하며 한마디를 했다.

"와, 루이 엄청 컸네. 아담도 많이 큰 것 같은데? 지안이 너보다 한 뼘이나 더 큰 것 같아."

아이들의 키를 비교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마음과 다르게 비교법의 문장을 말하고 말았다.

"나 키 작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제내들한테 하는 말이지. 뭘 먹고 저렇게 크는 걸까? 뭐 특별한 거라도 먹나? 너희도 잘 좀 먹자. 고기도 많이 먹고, 우유도 많이 마시고....."

"엄마, 나 우유 매일 마셔도 키가 잘 안 크는 것 같은데."

"그러게.... 엄마, 아빠가 작아서 그런가 봐. 미안하다....."

결국 내 사과로 대화를 끝냈다.


어째서 다른 아이들의 성장은 눈에 띄게 보이는데 내 아이가 크는 것은 티도 안 나는 것일까?

페이스북에 뜨는 3년 전 사진, 5년 전 사진을 봐야,

"와, 너네들 정말 많이 컸다!"

라는 말이 나오다니.




우리 집엔 내 아이들처럼 더디게 자라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아보카도이다.


아보카도를 먹고 나온 씨를 깨끗이 씻어서 양쪽에 이쑤시개를 박아 아랫부분만 물에 잠기도록 담가두었다. 한마디로 반신욕을 시켜두었다. 아보카도 씨 발아 시키기(**발음주의, 욕 아님 주의)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씨가 썩어버리거나 말라버리거나 싹이 나오지 않거나.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보카도 씨만 생기면 나는 다시 씨를 깨끗이 씻고 이쑤시개를 양쪽에 밖아 반신욕을 시킨다. 다른 실패에 비해 '씨 발아' 실패에는 돈도 시간도 마음의 상처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반신욕을 시켜 두었던 아보카도 씨에 드디어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두 달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이번에도 실패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찬찬히 드려다 보니, 아랫부분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에 담가 두었다.

며칠 뒤 다시 보니 살짝 보였던 금이 더 크게 벌어져있었다. 그 사이로 빼꼼히 작은 뿌리 하나가 나오고 있었다. 멈춰있는 줄 알았던 씨는 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내하며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얘들아 여기 좀 봐바. 아보카도 씨에 뿌리가 생겼어~~~"


어쩜 우리의 삶이 이 작은 아보카도 씨와 똑같은지....


지금 열심히 우유를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눈에 띄게 키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처럼,

지금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당장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당장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며,

지금 투자를 한다고 해서 당장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단한 씨앗을 쪼개고 뿌리를 내리기까지, 양분을 모으고 모으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우리는 모르기에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




지난 주말,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화들짝 놀랐다.

겨우내 안개로 자욱하던 숲 속의 호수가 윤슬로 반짝이며 아침을 깨웠다. 유난히 길고 어둡게 느껴지던 유럽의 겨울이 드디어 끝나가는 게 보였다.

딸아이는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짧은 반바지를 꺼내 입었고, 나는 그토록 입고 싶었던  새로 산 셔츠를 꺼내 입었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이나 우리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언제 폈는지도 모르게 분홍 벚꽃과 개나리가 여기저기 펴 있었다.

우리는 이제야 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와 있었던 모양이다.

추운 겨울 동안 먹지 못했던 젤라토를 먹으러 집 근처  블루 아이스 바(blu ice bar )로 향했다.  아이들과 젤라토를 받아 들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뭐라 뭐라 말을 한다. 이제는 이탈리아 말 좀 할 줄 아느냐는 말 같다. 나는 "노~"라고 답했다. 아이들을 가리키며 아이들은 이제 말할 줄 아느냐고 다시 묻는다. "노~"라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왜 아직도 말을 못 하느냐고, 학교에 다니는데 왜 말을 못 하느냐고 말을 했다.(라고 나는 짐작했다.) 영어로 말했지만, 아주머니는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이탈리아 말로 대답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그냥 웃어 보이기만 했다.



밀라노에 산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아이들은 학교에 열심히 다녔고 나는 열심히 글을 썼는데, 그런데 왜 우리는 이탈리아어를 아직도 이리도 못하는 걸까?


"엄마,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야!!"

"그래, 맞아. 중꺽마!! 일 년 더 살면 좀 더 잘하게 될 거야. 그렇지?"



부디 1년 뒤에는 이탈리아 말에도, 아이들의 키에도, 내 글쓰기에도, 아보카도 씨에게도

즐거움이 가득한 성장의 결과가 보이길 바랐다.



본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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