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애오욕 중에 ‘오’
“엄마는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데 잘 듣지도 않고 대답만 하고 있잖아.”
“내가? 아니야. 잘 듣고 있었어.”
“아니야. 엄마는 날 미워하는 것 같아.”
둘째 아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쏘아붙였다.
“엄마, 나 좀 안아줘.”
“왜 이래, 징그럽게.”
“아니, 아들한테 징그럽다니. 나 상처받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엄마 뽀뽀 좀 해줘.”
“야, 다 커서 왜 이래~~ 저리 가~~~“
틈만 나면 안기려 드는 첫째 아이를 장난스레 밀어내며 말했다.
“엄마는 왜 우리한테 애정 표현을 잘 안 해줘? 우리를 미워하는 거야? “
“미워하다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나는 엄마가 우리한테 스킨십도 많이 해주고, 사랑한다고 말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뜸을 들이다 아이들에게 한 가지를 고백했다.
“사실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아무도 나에게 “밉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화를 내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매를 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미움받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작은 마을의 동네 회관 2층에 주산 학원이 있었다. 언니가 그 학원을 다녔다. 어느 날 언니가 학원에 안 갔다는 이유로 비 오는 날 아빠에게 매를 맞았을 때 나는 어지러워 올라가지도 못하는 곳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니가 신기해 숨을 죽였다.
동생이 읍내에 있는 태권도 학원을 빼먹고 오락실에 갔다가 아빠에게 들켜 매를 맞았을 때 나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동생이 부러워 숨을 죽였다.
언니는 똑똑했고, 공부도 잘했고, 인기도 많았다.
동생은…. 귀한 아들이었다.
나는 잘난 언니와 귀한 아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먹기 싫은 것도 말하지 못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한 애씀은 나의 모든 욕구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논 일과 밭 일을 돕는 것,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일, 부모님이 들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방과 마루를 쓸고 닦는 것,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하는 것.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의 등뒤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이 모든 일들을 눈치껏 해냈다.
부모님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아이는
부모님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대학 학비를 낼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부모님께 아무런 요구를 하지 못했다. 지금도 엄마나 아빠에게 사소한 부탁을 할라치면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심지어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핏줄을 넘어선 감정의 선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것은 갈등이든, 애착이든, 미움이든, 원망이든. 복잡 미묘한 감정의 집합체이든.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느낀 것은 ‘무관심‘이었다. 무관심은 애정도 미움도 없는 무감각의 상태이다.
어렸을 적엔 나에 대한 무관심을 ‘미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관심을 받고 싶어서 착한 아이가 되었다.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요구도 하지 않았다.
딱 한번 서울에서 놀러 온 사촌 동생의 말투를 따라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엄마에게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이상한 말 하지 말라며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로 돌아갔다.
어른이 된 후에는 적당한 무관심을 즐겼다. 그 무관심은 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이끌었다. 지금껏 해외에 살 수 있는 이유 역시, 그 무관심 덕분이다.
“선량아, 엄마가 참 미안했다….”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미안했다는 말을 건네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일까.
엄마는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엄마도 마음을 표현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도 그런 마음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대답대신 거북이 등처럼 두꺼워진 엄마의 손을 잡았다. 뜨거운 숯을 삼킨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내 온몸에서 매꺼운 연기가 났다. 그 연기가 눈에 들어갔다. 나는 연신 눈을 꿈뻑이며 연기를 몰아내려 애를 썼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아이들의 격한 감정을 받아낼 줄 몰라서 나는 종종 내 부모님의 방법을 따른다.
그것은 무관심으로 점철된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 아들은 무관심을 ‘미움’으로 받아들인다.
어떻게 해야 이 좁디좁은 감정의 폭을 넓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무관심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날마다 아주 조금씩, 감정의 우물을 판다. 제발 나 좀 봐달라고 몸무림 치는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관심을 표현해 달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통해 내 감정의 우물이 조금 더 넓어진다.
얼마 전 제주도로 꽃구경을 다녀오신 엄마가 유채꽃 사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너무너무 좋다. 맛있는 것도 많고, 꽃도 너무 이쁘고……근데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죽겠네.”
엄마는 몇 년 전 무릎 수술을 했다. 허리는 이미 굽어서 구부정하다. 잘 걷지 못해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
평생을 논과 밭에서 쭈그려 앉아 일을 한 엄마의 세계는 딱 그만큼이었을 것이고 ,감정의 폭 또한 그만큼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미워한 것도,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는 그저 삶이 지나치게 고단했던 것이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노애락애오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