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스브루크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가기 전, 나는 굳이 이탈리아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탈리아 안에도 갈 곳이 너무나 많고, 두세 시간만 운전하면 멋진 도시에 도착할 수 있는데 5시간이나 걸리는 오스트리아라니.
“잠시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어….”
그의 이 말에 나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밀라노에서 노는 건 참 즐겁다. 멋진 건물과 아름다운 문화가 한대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난다. 100미터마다 자리한 커피숍에서는 진한 커피 향이 풍기고, 고소한 빵냄새까지 코끗에 닿는 날에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일을 하면 오만 정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노동환경이다 보니 한국 회사의 법인을 이탈리아에서 운영하는 건 인도에서보다 더 힘겹다고 한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원형탈모가 왔을까….
여행을 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꾼 것인가? “
마찬가지로,
“내가 그곳을 정말 다녀온 것인가? 그냥 꿈을 꾼 것인가?”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파스텔 톤의 기억이 모노톤의 추억으로 변하기 전에 여기저기에 기록을 한다. 이 때문에 여전히 첫 번째 여행지였던 인스브루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행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우리 네 사람의 기준도 재각각이다.
홍 군의 기준은 자연이다. 나무가 있고 산책길이 있고, 거기에 새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만족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꼭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를 예약한다.
반면에 나는 혼자 돌아다닐 수 있거나 멋진 커피숍이 있거나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좋은 여행이라고 판단한다. 한마디로 홍 군과 정반대 유형이라고나 할까.
첫째 아이는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으로 여행의 질을 판단한다. 여행지 이름은 기억 못 해도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한다. 페페로니 피자를 좋아해서 그 피자만 사주면 되긴 하지만.
둘째 아이는 숙소에 큰 의미를 둔다. 침대가 몇 개가 있고, 화장실이 몇 개가 있는지를 따진다. 거기에 이불과 베개가 포근하면 그 여행은 진짜 좋았다고 기억한다.
할슈타트는 나와 둘째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여행지였다. 숙소 분위기는 포근했다. 싱글 침대 2개와 퀸 사이즈 침대 하나, 소파까지 2개가 있어서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퀸사이즈 침대 하나를 차지해서는 아니다.
숙소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일어나 혼자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고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걸었다. 저 멀리 알프스 설산이 햇살에 비춰 반짝였다.
이른 아침에 문을 연 카페로 들어갔다.
“당케”라고 인사하는 아주머니에게 “부온 조르노”라고 화답할 뻔했다.
카푸치노와 브리오쉬를 시킨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동네 사람들이 들어와 시끄럽게 인사를 하더니 커피를 시키고 앉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의 분위기를 딱 만났다.
그런데 오전 10시에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뭔가 아쉬워 더욱 천천히 카푸치노를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