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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08. 2023

6. 공부 잘하는 그 집 딸이 부러울 때

나의 과거를 기억해내기

셋째 언니의 딸, 쭈아가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온다.

“엄마~ 나 올백받았어~ 전 과목 쌍똥그라미야~”

“우와, 진짜?”

“응, 우리 반에서 딱 3명만 쌍똥그라미야.“

“진짜 잘했네, 우리 쭈아.”

쭈아는 두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라테는 ‘수우미양가’였는데, 요즘은 도형으로 성적을 표시하나 보다. 그런데 시험만 잘 봐서는 절대 쌍동그라미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수행평가와 과제, 평소 학습태도까지 좋아야 가능하다나.

옆에서 지켜보던 쭈아와 동갑내기, 우리 집 큰 아들지안이가 한마디 한다.

“나는 9월이면 중학교에 가는데 아직 초등학생인 주아가 공부를 훨씬 더 잘하네….”


낙제하지 않고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우리 집 아이들에게 공부면 공부, 춤이면 춤, 개그면 개그. 못하는 게 없는 쭈아는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자기들만의 팬클럽을 만들고 존디스(jaundice)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하나, 둘, 셋, 존디스!!!”하며 외치고 다니니.

아이브(IVE, 딸아이의 최애 걸그룹) 저리 가라다.

쭈아 말에 의하면, 자기 말과 행동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주고, 재밌다고 웃어주며, 질투도 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지안이와 소은이뿐이라나. 사촌 사이지만 이 아이들은 촌수를 넘은 사이가 된 것 같다.




쭈아는 어려서부터 영특했다. 가르쳐주는 데로 흡수했고, 공부를 좋아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학원에 가기 싫은 마음을 이기는 아이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선 더 잘 뒷받침해주고 싶을 수밖에.

얼마 전엔 꽤 유명한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학원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의 아이들만 다닐 수 있으며 6학년이지만 중학교 수학을 배운다고. 그것도 기초 수학이 아니라 최고급 수학이라고….

한 번은 쭈아와 함께 작은 언니(아이들에겐 작은 이모) 집에 놀러를 갔다. 한창 수학학원 숙제를 하던 쭈아가 우리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문제를 읽어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있던 작은 이모, 이모부, 언니, 오빠 모두 그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쭈아야, 네가 우리 중에 가장 똑똑하다~~”

우리는 바로 인정하고 말았다.


공부 잘하는 조카의 엄마(나의 언니)를 보니, 정말 부지런하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특목고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는지도 꿰뚫고 있다. 아이 수준에 맞는 학원을 찾아서 보내고, 아이들의 학습 동기부여를 위해 캠프도 보낸다.

그런 생활을 아이가 싫어한다면 그만할 테지만, 또 아이는 아이데로 계속하려고 한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언니가 대치동 엄마와는 결이 좀 다르다. 놀릴 때는 확실하게 놀리고, 시킬 때는 또 확실하게 시킨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엄마는 한쌍의 콤비 같다. 그런 언니와 조카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 부럽다….

우리는 쭈아네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우리 아이들을 너무 방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의 가능성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학 학원은 커녕 그 흔한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도 보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보지만, 엄마인 내가 부지런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한다.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만 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네 명의 형제가 등장한다. 이 형제들의 서로 다른 인생, 가치관, 사상을 통해 인간의 본성, 돈 등 인간의 삶에 다양한 면을 다루고 있다. 소설 분량이 너무 많아 다 읽진 못했지만, 이 문장을 만난 것만으로도 책 전체를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이 문장을 보며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바로 ‘추억’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공부엔 자발적으로 게으른 편이지만, 아이들과 추억을 만드는 일에는 꽤나 적극적이다. 그건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거나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우리들만의 추억을 쌓는다.

얼마 전엔 오랜만에 함께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로는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책을 읽어주지 않았지만, 이번엔 함께 한글책과 영어책을 읽으며 대화를 했다. 오랜만에 엄마와 시간을 갖게 된 아이들은 꽤나 즐거운 눈치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추억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학업에 있어서는 뒤로 물러나 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는 꽤나 적극적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첫 번째 책을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들만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이게 부디 아름답게 포장되기를 바라며…..


더욱이 나와 남편은 아이들의 자기계발 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자아실현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매번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느라 분주하고, 남편은 영어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우리가 각자 자아실현을 이루어 내는 동안 아이들은….. 방치 중이다. 아니,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다.


우리 둘 다 이모양이니,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한 명이라도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다면 맨날 싸웠을지도 모른다.



내 딸아이도 어렸을 적엔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 20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글자를 통으로 알기 시작했고, 3살 때부터 혼자 책을 읽었다. 돌 무렵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5살 때 한글을 떼었다.

나는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더 시키고 싶었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시킬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극성 엄마가 한 명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내 딸아이는 천재가 아니라 언어적인 감각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더 빨리 틔였던 것 같다. 글자를 알고,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은 아이들마다 적정시기가 다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1시간째 붙들고 풀고 있는 쭈아와 그 옆에서 언제 숙제가 끝나냐고, 빨리 같이 놀자고 아우성인 우리 아이들을 보니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아휴…..

언니 집에 남아 있는 수학 문제라도 풀라며 주섬주섬 아이들 앞에 놓아본다.



아이들이 수학을 잘 못할 때 나는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아…. 나는 ‘수포자’였다.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리 공부를 해도 문제를 풀지 못했다. 나는 수학도 암기과목처럼 외워서 시험을 보곤 했다.

나도 그랬는데, 내 유전자를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난 내 아이들이 수학 천재가 될 리 없다. (남편도 수학을 그다지 잘 하진 못했다고….)


다행히도 프랑스학교의 수학이 한국학교의 수학에 비해 많이 쉬운 편이다. 아이들은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며 그나마 수학부심(한국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우리 조카가 부럽지만, 나는 우리 언니처럼 아이들을 뒷받침해줄 수 없으니, 부러움과 함께 내 아이들에 대한 기대도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우리의 소소한 추억이 내 아이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어본다.


그리고 쭈아의 무한한 미래를 응원하며 이모와 더욱 친하게 지내자고 손을 내민다.



**공부 잘하는 그 집 딸아이가 부러울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공부 못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기
2. 유전자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기 (특히 아이들의 두뇌는 엄마를 닮는다고….ㅡㅡ;;)
4. 아이들이 못하는 것 말고 잘하는 걸 찾기
5.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부모 사이의 정서적 친밀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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