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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02. 2023

5.  다른 집의 아빠가 부러울 때

내 아빠의 손을 잡아보기

“아빠 위암이래!!”

가족 단톡방에 동생의 메시지가 떴다. 그 아래로 언니들과 형부들의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졌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 말았다.


아빠는 올해 팔순이시다. 그 기념으로 내가 한국에  방문하는 날에 맞춰 가족사진 촬영과 수영장이 딸린 펜션을 미리부터 예약해 두고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아빠의 연세는 팔십이지만, 체력이나 외모는 70대 초반이시다. 여전히 논농사와 유자농사를 지으시고, 흑염소와 닭을 키루신다.  틈틈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시고, 몸에 좋다는 걸 찾아드신다. 물론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하시기도 한다.


젊은 시절엔 태권도를 배워 태권도를 가르치셨고, 국민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계실 적엔 제자들과 찐~한 사제 관계를 갖기도 하셨다. 워낙에 성격이 호탕하고 잘 베푸는 선정이라 주위에 친구들이 많지만, 바른말과 옳은 말을 잘해서 면사무소나 농협에서 싫어하기도 한다.

올초에는 노인대학에 입학하셨는데 20명 중에 반대표가 되셨다며 엄마는 혀를 내두르셨다. 어찌나 앞에 나서길 좋아하시는지…. 그러고 보니, 앞에 나서는 걸 엄청 싫어하는 나는 아빠를 하나도 안 닮은 모양이다.





나는 아빠를 오래도록 미워했다.

제자들에겐 태평양 같은 사람이 자식들에겐 작은 마음 하나 내어주지 않는 것이,

남들에겐 아끼지 않는 사람이 가족들에겐 짠돌이처럼 구는 모습이,

본인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사람이 엄마에겐 깐깐하게 구는 모습이,

별것도 아닌 일에 버럭 화내는 모습이,

정말 싫었다.

나는 엄마가 왜 아빠랑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지 의아했다. 아빠가 쳐놓은 그늘 아래서 일하고 밥하고 자고 또 일하고 밥하고 잠만 자는 엄마의 일상이 영원회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여자의 일생을 대표하는 것 같아서 자주 화가 났다. 엄마 편에 서서 아빠에게 잔소리를 좀 할라치면, 니들이 뭘 아느냐고 되려 서운해하셨다.


대학에 가서도, 결혼을 할 때도 나는 아빠에게 아무런 금전적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넷째 딸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숙명 덕분에 어쩌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딸아이를 끔찍이 챙긴다. 딸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아빠를 잘 따랐기도 했거니와 예쁜 짓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들과 다르게 눈치가 빨라서 우리 집의 서열을 빠삭하게 안다. 평소엔 엄마인 내가 1순위지만, 월급날엔 1순위가 아빠로 바뀐다는 걸 안다. 부부싸움을 한 후에 딸아이는 아빠에게 딱 붙어서 쫑알거린다. 그러다 자기가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걸 던지듯 말하고, 남편은 그걸 냅다 문다. 아빠는 딸바보라는 말은 멀리 있지 않았다.


사이좋은 아빠와 딸들을 보면 참 부럽다. 내면에 안정된 감정적 교류가 느껴진다. 아빠에게서 받은 사랑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딸들이 마냥 부럽다. 아빠의 신뢰를 등에 없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모두 챙기는 모습에서 아빠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는다.


우리 아빠가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조금만 더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했다면 나의 인생은 다라졌을까?

부질없는 저울질을 해보지만, 내가 어찌해도 바꿀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쳔륜을 함께 깨닫는다.




1년 반 만에 만난 아빠의 얼굴이 많이 야위셨다. 다리에 탄탄하게 붙어있던 장딴지 근육도 많이 사라졌다. 아빠가 걷는 폼을 보니,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다. 아빠는 나이가 들어도 탄탄한 모습 그대로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었다.


생전처음으로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빠에 대한 원망, 미움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 아빠 덕분에 이 세상에 나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키우시느라 정말 고생하셨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빠는 암도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웃으시며 말했다.

“괜찮애, 암시랑토 안 해. 걱정하지 말어. 내가 월남에서도 안 죽고 살아왔는디~”

노인이 된 아빠와 중년이 된 딸은 이렇게 그동안의 묵은 감정을 씻어낼 수 있었다.



며칠 후에 있을 아빠의 위암 수술을 위해 온 가족이 출동되었다. 언니들과 형부들, 필요하면 고모들과 손주들까지 동원되어 보호자가 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아빠 주위엔 사람이 많다. 그걸 생각하니 아빠가 삶을 허투루 살진 않았던 모양이다.


“아빠는 자식이 다섯이나 있고, 동생들도 다섯이나 있으니 이렇게 할 수 있지. 우리는 나이 들면 각자 알아서 간병해야 해. 미리미리 간병보험 들어놔.”

“자시들 학원 보내는데 돈 쓰지 말고, 노후 준비해. 그게 자식들 위한 길이야.”

“우리는 서로서로 보호자 되어주는 게 어때?

“조카들아, 너희들은 이제부터 사촌이 아니다. 친형제자매처럼 지내고 나중에 이모들 나이 들면 서로 도와서 간호해 줘~”


아빠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나에게 언니들과 동생을 준 것이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들 덕분에 어려운 상황도 희극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아빠가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다른 집의 아빠가 부러울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아빠가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2. 아빠와 좋았던 추억을 하나라도 품고 살기
3. 아빠가 살았던 시대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기
4. 내가 먼저 아빠의 손을 잡아드리기
5. 아빠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금전적 채무에 시달리게 하지도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기
6. 아빠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모습이라면? 안 보고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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