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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23. 2023

4.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이 부러울 때

나의 첫 문장과 마주하기

오랜만에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그동안 ‘스륵, 스르륵’ 소리를 내며 가볍지만 진중하게 넘기는 손 맛을 얼마나 느끼고 싶었던지.

종이책을 대신해 지적 양식이 되어 준 전자책에겐 미안하지만, 아무리 거칠게 넘겨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리 오래 묵혀놔도 쾌쾌한 종이 냄새가 나지 않는 전자책은, 그래서 실용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구독과 취소를 단 3분 안에 할 수 있으니까.

가벼움이 하찮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의 가벼움이 가끔은 참을 수 없기도 하다.



아이들을 이끌고 언니네 집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다.

책을 검색하는 척하면서 내가 쓴 책을 검색창에 썼다. 3년 전에 쓴 책이 검색되었다. 흐뭇한 전율이 발가락 끝까지 전해진다. 몇 달 전에 출간한 책도 검색했다.

“검색 건수가 0건입니다 “

이런, 희망도서 신청을 해야겠다…..


발끝에 머물러있던 전율을 마음으로 끌어모은 후 전자책으로 이미 읽었지만 한번 더 읽고 싶었던 책을 검색했다. 책장에서 책을  찾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스륵, 스르륵 소리를 들으며, 빳빳한 새책 냄새와 눅눅한 고서 사이의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었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저쪽에서 슬리퍼 소리를 내며 책장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지 풍경화 속의 배경일뿐.


문자로 마주한 시각적 문장들이 나의 뇌로 파고 들어가 형상학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이미지는 다시 후각으로, 미각으로, 촉각으로 전달되었다. 책 속 문장은 더 이상 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감탄과 동경이었다.


그 책의 저자를 잘 알지 못한다. 지난번에 공동저서를 함께 쓴 작가님과의 친분으로 우리 책의 추천서를 써주신 분이었다.

그 책은 브런치북 대상 작품이었다. 나는 부러 그런 류의 책(브런치북 대상을 받은)을 읽지 않았다.  종이책을 구하기 힘들다는 표면적인 핑계 아래엔 잔잔하지만 진한 부러움이 흙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내내 대상을 탈만하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적 견해를 풀어내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작가님의 지식이 부러웠다. 그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했던 작가님의 학력도 부러웠다.

돈을 빨리 벌 수 있다는 이유로 간호학과를 선택했던 나와 다르게 실생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고리타분한 철학을 선택하고, 전공하고, 철학자를 연구한 작가님의 뚝심이 부러웠다. 과거엔 그랬던 철학이 지금은 모든 인문학의 중심이 되어 문학과 예술을 넘어 실생활을 이끌고 있으니, 그런 작가님의 선견지명도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쓸 수 없는 문장을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이어 쓸 수 있는 작가님의 필력이 가장 부러웠다.


책을 읽고 나니, 글을 쓰기가 더욱 힘들었다.

한계가 드러난 내 지식과 바닥이 보이는 내 경험으로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읽어 내려간 책의 행간에 갇혀,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했다.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에는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내 글의 한계를 만나게 되는 단점도 있었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2년 전, 인도에서 한국으로 보낸 살림살이가 엄마집 창고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밀라노로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코로나와 여러 가지 비용적인 이유로 짐을 보내지 못했었다.

그 짐 속엔 밥그릇을 비롯해 우리의 결혼앨범, 옷, 이불 등 온갖 살림살이가 들어있었다. 그중엔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노트도 남아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치열하게 글쓰기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공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종이에선 쾌쾌한 냄새가 났지만, 난 그 노트를 버리지 못했다. 내가 쓴 문장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밀라노로 가져갈 짐 사이에 끼워 넣었다.


나는 3년 전의 나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열심히 읽고 써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는 지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 용기 내어 첫 문장을 써줘서 정말 고마워…. “


나의 첫 문장과 오랜만에  마주한 후, 다른 사람의 문장 앞에서 갈팡거리며 떠돌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을 쓰려고 애쓰다 지치지 말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헤아리자고 다짐했다.

앞으로, 뒤로 들썩이다 뿌옇게 변한 흙탕물이 조금씩 잔잔해지더니 아래로 아래로 침잠했다. 고용해진 마음의 물이 투명해지자 부러움과 나 사이에 경계가 뚜렷해졌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서 만나 글쓰기 모임을 통해 친해진 독자 한분이 책 사진을 보내며 말했다.

“이 책 읽다 너~~~ 무 재미없어서 작가님이 생각났어요.”

“작가님 책이 훨씬 재미있는데 아쉬움이 있어서 이렇게 작가님 최고라고 말하고 싶어서 카톡을…. “



잔잔하던 마음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래로 낮게 깔려있던 부러움의 침전물이 떠오른다.

그 사이로 글을 향한 나의 욕망도 부유하기 시작한다.


나에겐 독자가 있다.

그들을 위해 다시 한번 재미있는 글을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이 부러울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어설픈 글이라도 노트북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기
2. 6개월마다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기
3. 어설픈 나의 글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내 글을 응원하기
4. 1년 후의 내 글을 위해 지금, 마음껏 경험하고 마음껏 읽기
5. 좋은 문장을 만날 때마다 꼭 기록해 두기
6. 좋은 문장을 기록하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그 문장에 대한 감상을 꼭 적기
7. 글쓰기가 힘들 땐 잠시 쉬되, 절대 멈추지는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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