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딸, 아내 그리고 엄마

part 2. 여자로 사는 삶

by 선량


수요일

병원에 입원하기 하루 전날.

큰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말고는 아픈 적이 거의 없던 아이였다. 오랜만에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는 급기야 얼굴이 벌게지더니 힘들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보다 먼저 열이 나기 시작했던 조카의 손발에 발진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족구였다.

아직 열은 안 나지만 사촌언니와 온종일 붙어있던 내 딸아이와 다른 조카가 걱정되었다. 아픈 아이들을 언니에게 맡기고 입원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내가 입원할 병원 근처에 호텔을 예약했고 아이들과 함께 며칠만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목요일

자궁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제출하고, 남편을 지정보호자로 등록했다. 남편이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상에 앉아있으니 나이롱환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 침상에서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뭐 필요해? 아파?”

환자의 남편인가 보다. 수술한 아내를 살뜰히 챙기는 옆 환자의 보호자를 보고 있으니, 내일 내 남편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수술을 앞둔 나보다도 열이 나는 아이가 더 걱정되었다. 나는 남편을 호텔로 서둘러 돌려보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왔다. 수술전후의 주의사항과 수술시간을 알려주었다. 나는 오전 11시 즈음이었다.

아이들이 염려되어 수시로 카톡을 보냈다. 남편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직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손발에 발진이 생겼어.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해. 소은이는 아직 괜찮고.”

역시나 수족구였다.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누워 있으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불편했다. 아픈 아이들을 잊고 수술을 앞둔 내 생각만 하겠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애써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걱정 어린 마음을 누르고 눌렀다.



금요일

“최선양 님 수술실로 들어가실게요.”

12시가 다 되었다. 이동침대를 타고 수술실로 실려갈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다르게 나는 두 발로 걸어서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과 작별인사를 하고 간호사를 따라 수술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수술침대에 누워있으니 내 자궁을 드러내줄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걱정 마세요. 잘 될 거예요.”

짧은 커트 머리에 시크한 표정의 선생님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날 안심시켰다.

머리맡에서 마취과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렸다.

“0000 넣을까요?”

“네. 0000 주세요.”

“0000 25mg 주세요. “

“000 50mg 주세요.”

나는 눈을 끔뻑 끔뻑거리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최선양 님, 최선양 님, 정신 차리세요. 회복실로 오셨어요. 정신이 좀 드세요? 많이 아프시죠. 자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회복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내 이름을 간신히 말했다.

“무통주사 한번 눌러드릴게요. 아플 때 한 번씩 누르시면 되는데요, 너무 많이 누르면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릴 수 있어요. 자 이제 병실로 이동할게요. “

수술실에 올 때는 당당히 걸어왔지만, 다시 병실로 갈 때는 덜컹거리는 이동침대에 내 온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 도착하니 남편이 보였다. 거의 3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남편이 실쭉거렸다.

“왜 웃어? 뭐가 웃겨?”

“응? 아니야.”

“뭐가 아닌데.”

“살만 한가 봐?”

“아프거든! “

어젯밤, 아픈 아내를 살갑게 간호하던 옆자리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들의 대화를 나만 들었던가 보다. 고생했다며 토닥여줄 남편의 손길을 기대했건만,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핸드폰을 보고 있다. 본사와 법인 사이의 일을 하느라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붙들고 일하는 그에게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픈 아이와 아픈 아내 사이를 오가느라 그도 분주했겠지.

그저 한 남자의 아내로 조금의 배려와 관심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차분히 식어 내렸다. 결혼 11년 차의 내공을 여지없이 발휘하는 수밖에.

똑바로 누워도, 옆으로 누워도 저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무통주사 버튼을 한번 더 눌렀다.

“지안이 열은 어때? 소은이는 안 옮았을까?”

“응, 괜찮은 것 같아.”

“이제 애들한테 가봐. 애들 점심도 못 먹고 배고프겠다. 얼른 가. 난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알았어.”

수술을 마치고 나온 후에도 나는 나보다 아이들이 더 걱정되었다. 남편을 아이들에게 보내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토요일

“나 코로나래~~”

셋째 언니의 메시지에 가족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일요일에 퇴원을 하면 아이들과 함께 언니집으로 가기로 했었다. 그리고 위암 수술을 위해 아빠가 일요일에 입원을 하면 언니가 이틀 동안 아빠의 지정보호자가 되기로 했었다. 언니의 코로나 감염으로 모든 계획이 흐트러져버렸다. 코로나에 걸린 언니는 언니대로 심한 열과 몸살에 힘들어했다.

남편은 일요일에 본사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아이들과 나만 며칠 더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코로나에 걸린 언니집으로 갈 수도, 셋째 언니 대신 아빠의 보호자가 되기로 한 둘째 언니 집에 갈 수도, 조카가 셋이나 있고 엄마가 와 있으며, 날마다 출근을 해야 하는 큰언니집에 갈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몸을 회복시켜서 며칠만 호텔에 머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몸은 내 맘 같지 않았다. 배가 아파 걷기도 힘들고, 가스가 차서 숨쉬기도 쉽지 않았다. 급기야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도 못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이를 악물고 일어나 걸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이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글을 쓰려고 했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걷는데 할애했다. 빨리 내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요일

열심히 운동했지만, 가스는 빠지지 않았다.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볼록하게 불러있었다. 입원할 때 입고 온 반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낭패다. 퇴원하면 바로 언니집에 갈 생각에 옷을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퇴원수속을 하고 앞서 걷는 남편을 따라 어기적 어기적 걸었다. 걸을 때마다 온몸이 쑤셨다. 바지가 내려가지 않도록 허리춤을 꼭 붙들고 걸었다.

호텔 룸으로 들어가니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동안 무얼 먹고, 무얼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의 말에 주섬주섬 일어나 1층 편의점으로 향했다. 호텔에 조리를 할 수 있는 기기가 없었기에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들만 사서 올라갔다. 남편은 어느새 침대 속에 들어가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하고 있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제 곧 남편도 없을 텐데, 아이들과 나, 셋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침대에 누우니 배에 가득 찬 가스가 가슴을 눌렀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보았지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편하지 않았다.

그때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가 지금 데리러 갈게. 우리 집으로 와. 엄마가 너 걱정 엄청 하신다. 수술한 몸으로 어떻게 애들 보려고 그래. 준비하고 있어. 데리러 갈 테니. “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엄마의 딸이고 언니의 동생이었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한 이상,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딸로서 엄마의 마음은 간과했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고,

내가 내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엄마가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언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으구, 우냐? 뭘 울어 울긴. 혼자 참지 말고 힘들면 말을 해야지.”

“자궁 수술을 했더니, 호르몬도 이상해졌나 봐.”


그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큰언니집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편한 옷을 내어주었고, 형부는 안방침대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와 함께 책을 읽으며 딸로서의 일상을 누렸다.

그리고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무럭무럭 마음을 키웠다.


파친코 읽으시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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