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기 폐경에 대처하기 위해

part 3. 자궁이 없는 삶

by 선량

50대 초반인 큰언니는 갱년기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 아이를 모두 대학에 보낸 후 이제 좀 편안히 살만하니까 폐경이 찾아온 것이다. 25년 동안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20대에 따 놓은 자격증으로 50이 다 되어 영양사가 되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삐그덕 거리는 몸의 문제로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난소도 노화되어 기능이 떨어지는데 배란 및 여성호르몬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폐경이다. 대개 1년간 생리가 없을 때 폐경으로 진단한다고 한다.

폐경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40대 중후반에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지고 생리양이 줄어들기 시작해 생리가 완전히 없어진 이 약 1년까지를 폐경이행기라고 하는데 흔히 갱년기라고 부른다. 즉, 폐경은 질병이 아니라 자연적인 신체적 변화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갱년기를 힘들어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폐경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문제까지 줄줄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춘기도 갱년기도 호르몬 때문이지만, 호르몬 과다로 인한 사춘기보다 호르몬의 부제로 인한 갱년기가 훨씬 더 무서운 것 같다. 오죽하면 갱년기가 중2를 이긴다는 말이 있을까....



대표적인 갱년기 증상으로는 안면홍조와 발한이 있다. 갱년기 여성 약 60% 정도가 경험한다고 한다.

우리 큰언니는 몸에서 열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수면장애는 곧 피로감과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자주 짜증을 내게 되고 특히 남편이 하는 모든 것이 꼴 보기 싫어졌다고.... (모든 남편 님들, 호르몬 때문이니 이해해 주세요....)

또한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핸드폰 또는 지갑을 두고 온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한다. 이것은 곧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갱년기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질 건조증이 생겨 성교통을 유발하는데 이것은 곧 성욕저하의 원인이 되어 부부관계를 기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언니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어깨통증이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점심 한 끼를 마련해 주는 "해 돋는 마을"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영양사로 일하지만, 주방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식단을 짜고 조리를 하고 배식을 하고 설거지까지. 손과 어깨가 쉴틈이 없다. 폐경으로 약해진 뼈는 골다공증을 유발하는데, 무리한 주방일로 언니의 어깨는 날이 갈수록 삐그덕거리고 있다.




나는 자궁과 나팔관을 떼어냈지만, 난소는 살려두었다. 그래서 당분간 호르몬은 계속 분비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동료도 없이 달랑 난소만 남아있으니, 그 기능이 오래가진 못할 터. 아마도 다른 여성들보다도 조금 더 이른 폐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자궁적출 수술을 한 후 우울감에 빠져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벌써부터 이러니, 나중에 진짜 갱년기가 되면 얼마나 더 할까 싶다.

나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그때를 위해 몇 가지를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먼저, 가족들에게 요청했다. 본인이 사용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은 직접 설거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처음엔 어떻게 씻는지 모르겠다는 둥, 싱크대가 높아서 잘 못 씻겠다는 둥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설거지를 해준다. 가끔은 내가 미처 씻지 못한 그릇과 냄비까지도 씻어준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아이들이 도와주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둘째로,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sns에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노트에 직접 감정일기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노트에 온갖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우울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감정'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아서 모른척하고 내버려 두면 널뛰기하듯 발악을 하지만,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토닥여주면 안개가 자욱한 새벽바다처럼 출렁이다 이내 잠잠해진다. 내 감정을 비난하지 않고 가장 잘 받아줄 수 있는 게 바로 감정일기이다.


셋째는 일부러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이건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님의 영상을 본 이후에 실천을 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화를 많이 낼까?"라는 질문에 엄마, 형제, 아내, 자녀 등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많이 낸다고 답변했다.

우리의 뇌에는 '나'를 인지하는 뇌 즉, 내측 전전두피질과 타인을 인지하는 뇌가 있는데 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를 인지하는 영역에 가깝게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즉,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나와 엄마를 동일시하여 나를 인지하는 곳에서 엄마도 인지한다고 한다.... (엄마는 무슨 죄인가....)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 남편에게 화를 내는 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잘 참고 있다....


넷째는 가벼운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한두 시간 정도 가벼운 러닝을 했지만, 수술 후에는 조심하느라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대신 토스뱅크 어플을 켜고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1000보를 걸으면 10원, 5000보를 걸으면 20원, 만보를 걸으면 40원을 받을 수 있다. 만보를 걸으며 가볍게 운동도 하고 돈도 벌고, 님도 보고 뽕도 딴다.

비록 40원 벌고 3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오긴 하지만....




갱년기로 힘들어하던 큰언니는 몇 달 전부터 피크볼을 하고 있다. 배드민턴보다는 어렵고 테니스보다는 쉬운 라켓 운동으로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급기야 큰언니와 큰 형부, (곧 폐경이 될) 작은 언니와 작은 형부까지 합류하여 자기들만의 동호회를 만들어 토요일마다 피크볼을 연습한다. 지난주에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기도 했다.



비록 호르몬의 변화로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하지만,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름의 성취감도 챙기는 언니들을 보니 갱년기에 대한 두려움도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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