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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25. 2023

프롤로그 _ Benvenuti(어서 오세요!)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


밀라노에 오기 전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9년을 살았다.

해외 생활을 오래 했지만, 유럽은커녕 그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했다.


첫 3년 동안은 돈에 찌들었고,

그 후 3년은 육아에 찌들어 살았다.

그 후 3년은 코로나와 남편의 공황장애로 마음이 찌들었다.


이미 저개발국가의 삶에 물들어버린 나는 유럽이 무서웠다. 잊을만하면 보도되는 유럽인들의 아시아인 저격 사건이나 비하 발언은 유럽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나는 “이놈의 나라~”라고 애증을 담아 욕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서 적당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사는 게 편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동서남아시아의 소녀들이,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싫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밀라노행을 선택한 이유는 유럽에 대한 부담감이 기대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밀라노는 어때?”라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남편이었다.

“밀라노는 무슨, 우리는 밀라노랑 안 어울려!”

단박에 거절한 건 나였다. 하지만 밀라노와 이탈리아에 대해 검색을 해본 후 그와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남편은 밀라노에 가서 일할 자신이 없다고 했고, 나는 한번 가서 살아보자고 그를 설득했다. 밀라노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남편은 밀라노에서 살아갈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정작 나와 아이들은 첫 유럽행에 한껏 들떠있었다.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가을, 우리는 드디어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행여나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닌지, “하~”입김을 불어보았다. 마스크에 닿은 입김이 내 코로 다시 훅~ 들어왔다. 마늘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텁텁한 입냄새가 났다. 그건 몇 시간 동안 쓰고 있던 마스크에서 나는 내 고유의 냄새이기도 했다.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독일 프랑스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짐을 들고 내렸다. 노트북이 든 백팩과 작은 크로스 백, 이것저것 먹을거리와 아이들 학용품이 든 에코백까지. 두 아이가 메고 있던 가방과 남편의 기내용 캐리어까지 합치면 짐이 적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모든 짐을 검색대 위에 올려 두었다. 인천 공항에서 아무 일 없이 통과했기에, 이번에도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의 가방이 통과되고, 노트북과 태블릿도 통과되고, 크로스백과 에코백도 통과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들고 왔던 캐리어가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다.


승객의 짐을 검색하던 직원들이 남편의 캐리어를 열어보더니 자기들끼리 한참 동안 쑥덕거렸다. 그러더니 칸막이 안으로 옮겨 캐리어를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낡은 속옷이 보였다. 쑤셔 넣어두었던 김과 오징어도 튀어나왔다. 구리구리한 오징어 냄새가 프랑크푸르트 짐 검색대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우리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것인가? 별것도 없는 가방을 왜 자꾸 뒤지는 거야?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동양인 비하인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가방이 통과되기를 기다렸다.


여기가 인도나 방글라데시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분명 짜증을 냈을 것이다. 보딩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따졌을 것이다. 밀라노행 비행기를 놓치면 책임 질 거냐고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공항에서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저 쫄린 마음으로 멍하니 서서 우리 짐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 캐리어를 뒤지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총처럼 생긴 헤어 드라이기였다. 그건 남편이 어딜 가나 꼭 들고 다니는 드라이기였다. 다행히도 그들은 웃으며 캐리어를 건네주었다. 삐죽이 나온 그의 속옷과 김과 오징어와 헤어 드라이기를 쑤셔 넣고 짐을 들고 달렸다. 보딩 타임이 겨우 10분 남아있었다. 그리고 밀라노행 탑승구는 맨 끝에 있었다.

무빙 워커도, 카트도 없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양손 가득 가방을 들고 땀을 흘리며 뛰었다. 겨우 1분 남겨놓고 도착한 탑승구 앞에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앉아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티켓에 나온 보딩 타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지만, 항공사 직원은 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도 누구 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여기가 뉴델리의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라노에 사는 내내 여기가 유럽인지, 인도인지 많이 헷갈렸다. 이탈리아의 지역적 위치는 유럽이지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인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마음을 마음껏 풀어헤칠 수 있었다.


드디어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였지만,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에서 밀라노라는 도시로 가는 비행기처럼 매우 작았다. EU라는 거대한 연합에 속한 국가의 도시 간 이동은 국내선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것은 밀라노에 도착한 이후에도 비슷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했던 입국심사를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심사를 받지도, 여권을 확인받지도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유유히 짐을 찾아 아무런 보안 검색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왔다.


 <Benvenuti!>,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쓰여있었다.


드디어 밀라노에 온 첫날이었다.




밀라네제 2년 차 된 지금에서야 밀라노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쓰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아직 익지 않은 떫은 감처럼 밀라노와 이탈리아에 대해 말하기엔 제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었거든요.

여기저기에 단편적으로 흩어져있던 밀라노에 대한 에피소드를 모으고,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경험했던 것들을 매주 수요일마다 풀어보려 합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99년에 개봉한 알베르토 베니니의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를 본 후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어요. 그리곤 제 인생 영화가 되었지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절대 유머와 해학을 놓지 않았던 이 영화의 주인공 귀도처럼,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번 브런치북의 제목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영화였어요.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브런치북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느낀 인생과 삶을 대하는 마음을 관통하는 제목이었거든요.


밀라노의 삶이 독자분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몹시 궁금합니다.

재미와 감동, 삶의 깊이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매주 수요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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