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Oct 24. 2023

3.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마흔에게 던진 질문

4년 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첫 책을 낸 후 완전히 실패했다.

오래도록 간절히 꿈꾸었던 ‘출간’이라는 성과는 코로나라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뭍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의 영향도 없이 책이 팔리지 않았다면, 나는 회생불가능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나쁜 건지, 정신력이 좋은 건지, 나는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오기가 더 생겼다고나 할까.

소극적 반항아 기질이 이럴 때면 어김없이 발휘된다.


사실 나는 어중간한 내향인이다.

기질적으로 내향인이지만, 상황에 따라 유도리있게 외향인이 된다. 이런 성격은 모임의 리더가 되기에  유리한 면이 있다. 극단적이지 않기에 뭉근하게 오래도록 모임을 이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모임의 멤버가 되면 극내향인이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때는 책임감을 완전히 내려놓은 채 조용히 있다가 잠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든 모임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멤버들의 심정을 잘 아는 편….)

이런 이유로 다른 분이 이끄는 모임엔 잘 참석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하다 보면,

“이렇게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책 쓸 수 있습니다. 팔로워 쑥쑥 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경제적 자유 얻을 수 있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

라는 피드를 자주 본다.

그 피드를 보며 나는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성공 지향적으로 모임을 이끌어야 인기가 있을텐대….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들고, 독서 모임을 오래 하면서도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은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이미 가본 길을 따라, 그가 남겨 놓은 발자국을 따라 간다면 이런 의문을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도 이렇게만 한다면, 저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같은 확신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는 길엔 아무런 흔적도 발자국도 없으니,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만 일부러 찾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아직도 성공을 못 했....


그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보니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만 가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한국 아이가 없으니, 아이도 나도 뭐든지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이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지만,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희열도 느낀다.




한 번씩 잊을만 하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메세지가 온다. 그들은 방글라데시 또는 인도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이제 막 가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최대 고민은 “자녀의 학교”이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있는 국제 학교를 찾아보다가, 실패한 내 첫 책, “프랑스학교에 보내길 잘했어” 까지 읽게 되었거나, 정말로 내 아이들이 다녔던 그 학교에 본인의 자녀가 입학해 다니고 있다거나, 보낼 예정이거나.... 등등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또 선구자적 마음으로 그 학교의 좋은 점과 나쁜 점, 프랑스어를 못하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 학교 이메일과 홈페이지까지 구구절절하게 답장을 쓴다.

실패로 남은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걸어온 길에 발자국을 진득하니 남겨둔 모양이다.




낯선 나라에 처음 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구글 맵이다. 구글 맵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하하고,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더욱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힘들다.


처음에 밀라노에 도착한 날, 남편은 나를 데리고 숙소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길치, 방향치인 내가 염려되어서였다.

나는 구글 맵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지도에서 알려주는 길로만 가면 된다고, 제발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자존심을 뾰족하게 세웠다.


디드어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교에 가는 길,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히 구글 맵이 알려준 길로 갔는데 어느 골목길로 빠져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했고, 버스와 오토바이와 트램이 얽히고 설킨 도로를 어떻게 건너야 할지 알지 못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다시피 걸어서 교문이 닫히기 직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40분이나 걸린 것이었다.

학교가는 길


나는 숙소로 아주 천천히 돌아가며 내가 가야 할 길 곳곳에 발자국, 아니 눈자국을 남겼다. 저 가게에서 옆으로 돌고, 저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고, 저 골목 사이로 들어가서 쭉 직진을 하고.


그러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카페에 들려 카푸치노를 한잔 마시며, 한번 더 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이제는 절대 길을 잃고 헤매진 않겠지.



길을 많이 헤매본 나는 이제 길을 잃는 게 두렵지 않다. 그게 인간관계에서든,  sns에서든, 진짜 내가 걷는 길이든.


남이 만들어 놓은 지도가 아니라 내가 직접 걸으며 만든 지도이기에, 선구자적 마음으로 구구절절하게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들면 커피 한잔 마시며 마음의 여유를 부려보겠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려면 세상에 대한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내가 그린 그 지도 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두 발자국, 정재승, 58p>




내 첫 책.

은근 재미있어요……

https://m.yes24.com/Goods/Detail/85382388



작가의 이전글 2. 죽음은 가까이에 있을까, 멀리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