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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11. 2023

2. 죽음은 가까이에 있을까, 멀리 있을까?

마흔에게 던진 질문

“엄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

열 살 딸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 크게 사고 난 적은 없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어렸을 적에도 없었어?”

“아, 그러고 보니 몇 번 있었네.”

“그래? 언제?”

무심히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 그때는 그게 생사를 오가는 일이라 자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니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의 내 딸아이 나이였을 때 즈음, 나는 홍역에 걸렸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 쓰러지듯 방에 누웠는데 그 뒤로 일주일 넘게 일어나지 못했다.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머리를 들면 코피가 터져 베개를 적셨다. 세상이 뱅글뱅글 돌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집 근처에는 병원도 약국도 없었다. 엄마가 읍내에서 사 온 가루약이 너무 써서 안 그래도 텅텅 빈 위장에 남아있던 위액까지 모두 게워내었다.

일주일 후 온몸에 발진이 생겼고, 열이 서서히 가셨다. 나는 가까스로 일어나 앉아 아빠가 뒷산에서 잡아온 꿩 백숙을 먹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때 어떤 느낌이었어? 죽을 것 같았어?”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것 같아. 계속 잠만 잤었거든. 근데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날 보살펴준다는 느낌이 싫지 않더라. 죽음에 대한 감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러다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

“근데 왜 병원에 안 데려갔어? 그건 너무 하잖아.”

“그땐 그랬지… 워낙 시골이니까…..”


어렸을 적에는 생과사에 대한 의미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망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다.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도 있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길을 가다가, 놀러 갔다가, 여행을 갔다가 죽음에 이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보니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닥뜨리는 것보다 조금씩 내 주변을 정리하고, 내 삶을 정리하며 맞이하는 죽음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다.



지난여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시골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는 아빠와 동행을 했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빠,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요?”

“그러니께…. 나 어렸을 때는 진짜 힘들었거덩. 느그 할아부지가 경제적 능력이 한나도 없었어. 자식들은 많제, 집에 돈은 없제, 느그 할무이가 고생 마이 했다. 그러다가 내가 돈좀 보탤라고 월남전에 지원을 한 거 아니냐…..”


팔순이 된 아빠는 가장 좋았던 때를 회상하기 위해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새 아빠의 입에서는 젊은 시절의 아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그 시절에 고등학교까지 나온 덕분에 행정병으로 일할 수 있었다. 총 대신 펜을 들었고, 막사에서 사무실로 출퇴근을 했다. 전쟁터였지만 전방에서 싸우는 전우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날은 평소 퇴근 시간보다 조금 늦게 일을 끝냈다. 동료들과 막사로 돌아가려고 지프차로 향하던 순간, 그 차가 갑자기 폭발을 했다. 차가 주차되어 있던 곳은 매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날, 매점에서 일하던 아줌마 한 명이 사망했고, 아빠와 동료들은 찰나의 시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죽은 목숨이었지. 제시간에 일이 끝나서 그 차를 탔으믄 우린 다 죽었지. 나는 덤으로 얻은 인생을 산 샘이여. 그때가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믄, 지금이 두 번째 전환점인 갑다. 나는 내가 암에 걸릴 줄은 몰랐거덩. 워낙 건강했응께…..”


아빠가 담담하게 내뱉은 말을 들으며 나는 전장에서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황제를 떠올렸다. 죽음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매번 깨달은 마르쿠스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마치 그 일이 이 땅에서 네가 하는 마지막 일인 것처럼 행하고…..(중략) …. 인생은 한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


라고 말했다.

아빠도 마르쿠스처럼 자신의 삶이 유한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듯, 죽음 역시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과 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인 것이다.


나는 20대 때 매년 새로운 유서를 써서 서랍에 넣어두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과 사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진심을 작은 종이에 남겨두고 싶었다. 가진 재산은 얼마 없었지만 부모님 쓰시라고, 사망 보험금도 얼마 안 되지만 언니들 나눠 쓰라고, 그동안 살갑게 대하지 못해 죄송했노라고, 그리고 많이 사랑했노라고 썼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는 더 이상 유서를 쓰지 않았다. 하루를 힘껏 살아내기 버거워 내 죽음 이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마흔이 넘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해가면서 내 손이 덜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른한 일상의 틈사이로 죽음에 대한 고찰이 파고든다.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죽고 싶다는 마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자각하며 사는 사람은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 삶을 온전히 즐길 줄 알고, 감사할 줄 안다. 불필요한 감정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며, 본질이 아닌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큰아이가 겨우 다섯 살, 둘째가 세 살일 때 우리 가족은 치타공에서 다카로 이사를 했다. 남편이 이직을 한 상태였고, 위에 상사가 한 명 있었다. 그 상사가 이제 막 이사를 한 우리 집을 둘러보러 오셨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림 좀 제대로 장만 좀 하지. 이게 뭐냐?”


당시 우리는 그야말로 없는 살림이었다. 둘이서 겨우 돈을 모아 결혼을 했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방 2칸짜리 17평 빌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겼고,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기 전, 남편이 치타공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치타공에 가서도 마음껏 살림을 장만하진 못했다. 방글라데시는 후진국이었지만, 풍요로운 삶을 위한 가구와 가전, 손님 접대를 위한 식기와 식생활엔 쓸모없는 장식품들은 매우 값이 나갔다.

우리는 방글라데시에서 외국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등나무 가구와 마트에서 파는 싼 그릇을 사용했고, 크게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남들의 눈에 우리 형편이 궁상맞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직책에 맞는 품위를 지키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겉모습은 비본질적인 것들이었다. 것 치레가 우리의 형편을 넘어서는 일은 하등 쓸데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사람들의 시선도, 품위도 아니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상호 이해, 현재 뿐만 아니 과거와 미래도 바라볼 줄 아는 거시적인 시선.

우리에겐 이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키고 싶은 가치이다.



죽음은 늘어난 평균 수명과 상관없이 지극히 개별적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결국엔 죽음에 이를 거라는 건 우리 모두의 공통과제이다.

그 죽음이 가까이에 있든, 멀리 있든 중요한 것은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맞추지 말고, 타인의 시선에 기대지 말고,  sns에 보이는 모습들에 현혹되지 말고, 나의 형편, 내 감정, 내 행복에 시선을 드리우며 사는 것.

그리고 아침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 일.

이것이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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