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 이야기
다른 집의 남편들은 모두 자상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내를 끔찍하게 아껴주던데, 왜 우리 집의 남편만 남의 편인 걸까요?
혹시, 당신의 동거인은 남편인가요?
아니면 남의 편인가요?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진짜 부부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며칠 전 아침,
"자기야, 잠깐만 나 할 말이 있어."
하며 그가 날 불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런저런 나만의 일을 한 후,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의 학교 간식과 남편 점심, 남편의 셔츠 다림질까지 한 후 한숨 돌리고 있던 나는 그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있잖아. 그때 그거.... 그거 진짜 미안했어."
그... 거....? 그게 뭘까....
10년 넘게 살다 보니, 크고 작은 잘못한 일이 많다. 사과를 한 적도 있었고, 사과도 없이 그냥 시간이 지나니 잊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언제 적,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일까?
"그거 있잖아, 치타공에서 아이스크림 일.... 생각해 보니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렸었고,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이 좀 심했던 것 같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잘못했던 것 같아. 자기한테도 미안하고, 지안이 한테도 미안하고. 그때 소은이 임신했을 때인가? 소은이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참 미안하네....."
아.... 그 일, 치타공 아이스크림 사건....
잊어 먹고 있었다. 그때 그 사건을.
그러니까 내가 남편을 따라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따라간 지 약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축복받은 내 자궁은 그와 결혼하자마자 첫 아이를 임신하더니, 그를 8개월 만에 만나자마자 또 둘째를 임신했다. 정말이지 축복받은 자궁인데.... 지금은 없네....)
남편이 구해 놓은 집은 하필이면 한국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었고, 벵골어도, 영어도 못 했던 나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무슬림 국가라서 겁이 났던 나는 주중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이 쉬는 일요일에만 함께 교회를 가거나 마트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도 엄청난 적응력을 발휘하는 '초적응인간'
나는 치타공에 간 지 두세 달 만에 외출을 감행했고, 3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과일 가게에 가서 흥정을 했다. 6개월 즈음되었을 때부터는 둘째를 임신해 배가 나온 상태에서도 릭샤를 타고 마트를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겁도 없다며 화를 내곤 했지만, 온종일 남편만 목 빠지게 기다리며 집에만 있는 것은 감옥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매달 생활비를 주었다. 그 생활비로 한 달을 지내고 나면 빠듯했다.
아무것도 없이 결혼해 아이까지 키워야 했던 그는 미래를 위해 지금 돈을 아끼고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돈까지 아껴 써야 하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왔는지, 뭘 믿고 그를 따라왔는지.
누구라도 붙잡고 신세 한탄을 하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게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나는 꾹 입을 닫았다.
그날도 심심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그중에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치타공에서는 야채나 과일은 매우 쌌지만, 수입품 과자는 꽤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겠나....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맛있어 보이는 걸로 하나 샀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 영수증을 하나하나 드려다 보던 남편이 비싼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싼 현지 아이스크림을 사면 되는데 이렇게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왔냐며,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나를 나무랐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하며 돈을 계획적으로 잘 써야 한다는, 잔소리도 덧붙였다.
나는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나 먹으려고 산 것도 아니고 당신이랑 지안이 먹으라고 산 거라고, 억울해하며 따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가서 환불을 하거나 다른 싼 아이스크림으로 교환을 해야겠다며 그 아이스크림을 들고 마트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은 환불이나 교환이 안된다고 쓰여있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를 따라나섰다. 마트에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실수로 이걸 샀다고,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했지만, 마트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왔고, 그는 비싼 수입산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해치웠다.
자고로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잘못한 건 두고두고 떠오르는 법.
나는 잊을만하면 그 일이 떠올랐고, 남편에게 그때 그 일을 언급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사과를 받았지만, 장난 반 진담 반의 사과였다. 그 일도 10년 이상이 되니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남편이 그 일을 먼저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사과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다니…..
남편과 함께 산 12년의 세월이 그저 흐른 것은 아니었나 보다.
두 아이의 아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면서 남편 또한 큰 부담을 안고 살았다. 어렸을 적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경험은 남편에게 돈에 대한 강박으로 돌아왔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 강박과 부담은 "미래를 위해 지금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강박과 부담, 신념이 산산이 깨진 건 남편이 공황장애를 앓고 난 이후였다. 미래를 위해 지금 아끼고 돈을 모아도 건강이 나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는 절실히 느꼈다.
공황이 왔던 그 시간 역시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덕분에 그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10년 전 잘못이든, 5년 전 잘못이든, 바로 어제의 잘못이든. 내 잘못이 떠오른다면 지금 바로 "미안해"하고 사과하길 바란다.
때 늦은 사과란 없다.
그리고 사과는 언제나 옳다.